[헬스코리아뉴스] 동네의원이 아픈 곳을 치료하는 공간에서 주민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차의료 거점으로 탈바꿈한다. 보건복지부는 오늘부터 전국 120개 의원에서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50세 이상 주민이 의원에 등록하면 질병 치료뿐 아니라 건강검진 상담, 운동·식이·복약 관리, 방문 진료와 간호, 병원 연계, 지역사회 돌봄까지 받을 수 있다.
이번 사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진료의 범위보다 진료 방식의 변화다. 의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맡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와 영양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환자를 관리한다. 의원이 자체적으로 팀을 꾸리는 단독모형 20곳과 거점지원기관을 활용하는 협력모형 100곳으로 나뉜다.
보상방식도 달라진다. 교육과 상담 등에는 환자의 건강상태와 인구학적 특성을 반영한 연간관리료 형태의 통합수가가 적용된다. 참여기관은 진료·검사·처치에도 기존 행위별수가 대신 통합수가를 선택할 수 있고, 팀 운영과 환자관리 성과에 따른 별도 보상도 받는다.
이런 방향의 일차의료 돌봄체계는 이미 해외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영국은 여러 의원이 '일차의료 네트워크(PCN, Primary Care Network)'를 구성하고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 영양사 등 다양한 직종을 일차의료에 배치해왔다. 여기에는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재정지원제도를 운영한다. 최근에는 지역 특성에 맞게 인력과 서비스 구성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도 확대하고 있다.
호주는 '마이메디케어(MyMedicare)'라는 일차의료 제도를 통해 환자가 평소 이용하는 의원과 GP(일반의)를 자신의 주된 진료기관과 의사로 등록해 지속적으로 진료받도록 하고 있다. 만성·복합질환자는 등록한 의원을 중심으로 관리계획을 세우고 다학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정부는 행위별수가와 별도의 지원금을 결합한 지불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한국형 주치의 모델'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호주 등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주치의'라는 이름만 붙인다고 일차의료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치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환자를 계속 돌볼 수 있는 인력과 보상체계, 의료기관 간 연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OECD도 복합 만성질환 관리에서 전통적인 행위별수가만으로는 진료조정을 충분히 유도하기 어렵고, 다학제 진료와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지불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다.
이번 시범사업에서도 가장 먼저 확인할 부분은 다학제 팀의 원활한 운영이다. 참여 직종은 다양하지만 동네의원마다 간호사와 영양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를 상시 고용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는 그래서 거점지원기관과 연계하는 협력모형을 함께 만들었지만, 여러 기관에 흩어진 인력이 환자 정보를 얼마나 신속·정확하게 공유하고 함께 관리할 수 있을지가 과제다.
통합수가도 중요한 시험대다. 환자 한 명을 오래 상담하고 복약과 식습관을 관리하며 병원·돌봄기관까지 연결하는 일은 짧은 외래진료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보상 수준이 실제 투입되는 자원을 따라가지 못하면 의원은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렵고, 반대로 관리 필요도가 다른 환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보상하면 과소·과잉 서비스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번 사업이 건강상태와 인구학적 특성을 연간관리료에 반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과평가도 등록 환자 수나 상담 건수에 머물러서는 사업의 실질적인 효과를 알기 어렵다. 만성질환 조절 상태가 나아졌는지,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과 입원이 줄었는지, 전문의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적절한 시점에 병원으로 연결됐는지, 환자가 같은 의원에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았는지 등을 장기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도 일차의료 개편은 환자 등록과 다학제 인력 확충뿐 아니라 진료의 연속성과 의료기관 사이의 조정을 핵심 요소로 다뤄왔다.
이번 시범사업은 약 3년간 진행된다. 정부는 운영 결과에 따라 참여기관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형 일차의료 모델'의 성공 여부는 이번 시범사업이 얼마나 안정적인 운영체계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