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정부가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를 14년 만에 전면 개편했다. 방향은 분명하다. 연구개발(R&D) 투자를 더 늘리고, 신약 개발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개편에서 의약품 매출액 대비 R&D 비중 기준을 2%포인트씩 높였다. 매출 1000억원 이상 기업은 기존 5%에서 7%로, 1000억원 미만 기업은 7%에서 9%로 상향했다. 다만 기업 부담을 고려해 새 기준 적용은 3년간 유예했다.
심사 방식도 바뀐다.
세부평가 지표는 25개에서 17개로 줄었다. 연구개발 투자와 임상시험 건수, 수출규모 등 일부 항목은 정량지표로 바꿨다. 인증 실패 기업에는 미인증 사유도 알려준다. 외국계 제약사를 위한 별도 인증 유형도 만들었다.
제도를 손질한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무엇을 '혁신'으로 볼 것인가다.
R&D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은 당연히 평가받아야 한다. 신약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개발 투자가 없다면 혁신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투자비율 자체가 혁신은 아니다. 연구비를 많이 썼다고 좋은 신약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임상시험 건수가 많다고 모두 의미 있는 개발 성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혁신형 제약기업이라는 이름에는 결과가 따라야 한다. 후보물질이 실제 임상에 진입하고 다음 단계로 진전됐는지 살펴야 한다. 기술수출이나 글로벌 공동개발, 해외 허가와 상업화 같은 성과도 중요하다.
국내에서 개발한 신약이 실제 환자 치료에 쓰이고 있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이번 개편에서 임상시험 건수와 수출규모를 정량평가에 포함한 것은 그런 점에서 진전이다. 인증제를 단순한 투자규모 평가에서 성과 중심으로 옮겨가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 기업마다 신약개발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연구조직을 본사에 둔다. 어떤 기업은 별도 법인으로 분리한다. 외부 기술을 도입해 개발하기도 하고, 자체 후보물질을 글로벌 기업에 기술수출하기도 한다.
따라서 단순한 R&D 비율만으로 기업의 혁신역량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연구개발 조직을 자회사로 분리한 기업은 별도재무제표 기준 때문에 모회사의 R&D 실적이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조직을 본사에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혁신성이 더 높다고 볼 수도 없다.
인증제도가 기업의 조직구조를 왜곡해서는 곤란하다. 기업이 인증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조직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게 만드는 제도라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국내에는 이런 기업도 있다. 수십 년간 해외 제약사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국내에 도입·판매하는 사업이 주축인 기업이다. 상당한 연구개발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자체 개발한 신약을 상업화한 실적은 단 한 건도 없다.
정부는 그동안 이런 기업까지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인증해왔다. 향후에도 이 같은 기업이 연구개발비 비율만으로 혁신성을 인정받는다면 이재명 정부의 이번 제도 개선은 그 취지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봐야 할 것은 형식이 아니다. 신약개발에서 어떤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냈는가. 연구가 얼마나 진전됐는가. 기술이 얼마나 해외로 확장됐는가. 환자에게 어떤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제공했는가. 그 결과를 봐야 한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은 정부가 기업에 붙여주는 명예로운 이름표다. 약가와 연구개발 지원 등 정책적 혜택과도 연결된다. 그만큼 기준은 엄격해야 한다.
연구비를 많이 쓰는 기업이 아니라, 연구비를 실제 혁신으로 바꿔낸 기업이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 '혁신형 제약기업'이라는 이름에도 무게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