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바람은 강하게 불수록 뿌리는 더 깊어지고, 파도는 높을수록 배는 더 멀리 간다."
동양의 오랜 지혜를 담은 이 말은 역경이 오히려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이 격언은 우리에게 희망이 아닌 '섬뜩한 경고'처럼 다가온다. 미국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중국 바이오 기업들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그 비바람 속에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며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표적 바이오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가 발표한 2025년 실적은 실제로 충격적이다. 트럼프 정부의 생물보안법(Biosecure Act) 최종 서명으로 중국 바이오 기업의 미국 시장 퇴출이 공식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전년 대비 16.7% 증가한 218억 위안(약 4조 75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은 우시바이오의 자매 기업인 우시앱텍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또한 2025년 매출이 전년 대비 15.8% 증가한 455억 6000만 위안(한화 약 9조 9280억 원, 미화 약 66억 달러)을 기록하며 중국 바이오기업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바로 대목에서 첫 번째 역설이 발생한다. 우시바이오의 2025년 매출은 절반 이상인 58.1%가 바로 자신들을 압박했던 미국 시장에서 나온 것이다. 이어 유럽연합(EU)이 23.1%였고 정작 자국에서의 매출 비중은 12.3%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해 우시바이오의 미국 내 매출 증가율은 18.3%에 달했으나, 자국은 오히려 5.0% 감소하며 해외 매출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흐름을 보였다. 때릴수록 위축되기는커녕, 규제의 발원지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셈이다.
두 번째 역설은 시장의 신뢰다. 미국 정부가 우시바이오와 우시앱텍을 '우려 바이오기업'으로 지목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음에도, 글로벌 제약사들은 여전히 중국 기업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이미 대체 불가능한 '기술적 참호'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규제의 칼날이 번뜩여도 당장 신약 개발이 급한 글로벌 빅파마들에게 이중항체나 ADC(항체-약물 접합체) 같은 우시의 고도화된 플랫폼은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다.
실제로 2024년 148개였던 우시바이오의 신규 프로젝트 수주는 규제가 구체화된 2025년 오히려 209개로 폭증했다.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당 기업의 기술적 독점력을 재확인시켜 준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2021년 설립된 중국의 CL바이오로직스가 불과 5년 만에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이어 세계 2위의 생산 캐파(선전 사이트 기준)를 확보하며 우리 턱밑까지 쫓아온 대목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미국의 압박은 중국 바이오 산업을 고사시키기는커녕, 그들이 더 복잡하고 강력한 기술로 무장하게 만드는 역설적 동력이 되고 있다. 규제의 불확실성이 걷히자마자 글로벌 수주가 쏟아지는 모습은, 지정학적 리스크조차 압도하는 중국 바이오의 저력을 방증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중국 기업들이 때릴수록 커지는 역설의 시간 동안, 우리 'K-바이오'는 과연 그 반사이익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 캐파 1위를 수성하고 있다지만, 중국 기업들의 추격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 바이오의 성장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낙관적 기대는 버려야 한다. 중국 기업들이 거센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나가는 사이, 우리는 그 바람을 뚫고 나갈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자문해 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