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코미디어)[헬스코리아뉴스] 보건의료 현장의 최전선이 무너지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이 해외 제조사의 사정과 글로벌 공급망의 논리에 휘둘리고 있어서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미애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국내에서 공급이 중단된 수입 의약품 사례는 무려 1418건에 달한다. 이는 대체 불가능한 필수 약제들이 해외 공급원의 결정 하나에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공포스러운 지표다.
# 수입 의존도가 부른 필수의약품 공백의 비극
가장 뼈아픈 사례는 천식 환자들의 필수 약제인 '벤토린네뷸(Ventolin Nebules, 성분명 : 살부타몰황산염·Salbutamol Sulfate)'이다. 2024년 해외 제조소의 생산 차질로 공급이 중단되면서 현장의 환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영진약품이 공급 중단을 예고한 항생제 '답토주(Dapto Inj, 성분명 : 답토마이신·Daptomycin)' 역시 수익성 악화와 수입 계약 종료가 맞물린 결과다.
문제는 이처럼 공급이 중단된 수입 의약품 중 상당수가 국가필수의약품이라는 점이다. 수술 후 혈압조절에 필수적인 '니카르디핀(Nicardipine)' 등 중증 응급 환자에게 쓰이는 약물들조차 채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수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한시적 의약품 품절 사태가 아니라, 대한민국 보건 안보의 심각한 결손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필수의약품의 원료와 완제 생산을 민간 제약사의 인도주의적 사명감에만 의존하기에는 현재의 약가 구조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의 벽이 너무 높다.
# 원료 국산화와 공공 생산망 확보가 유일한 해법
정부는 매번 수급 불안정 민관 협의체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지만, 해외 제조원의 생산 중단이나 단가 인상 요구에는 속수무책이다. 올해도 퇴장방지의약품의 원가보전 기준을 상향하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 체감도는 낮다. 원료비 상승분을 반영하는 속도가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사후약방문식으로 약가를 몇 원 올려주는 수준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보다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우선 20%대까지 떨어진 원료의약품의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 도입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퇴장방지의약품 및 필수 수입 약제에 대한 약가 가산제를 실효성 있게 개편해 제약사들이 생산과 수입을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식약처가 추진 중인 '공공생산·유통 네트워크'를 조속히 안착시켜,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필수 약물을 국가가 책임지고 위탁 생산하거나 비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도 강화해야 한다. 필수의약품 공급은 국민의 생명권과 직결된 국가적 보건 안보 과제다. 제약사의 이윤 논리나 정부의 재정 절감 논리에 밀려 환자의 생명선이 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1418건의 공급 중단 사례는 우리 보건의료 시스템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