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호 편집국장[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바이오시밀러 허가 절차의 최대 난제로 꼽히던 상호교환성(Interchangeability) 입증을 위한 교차 임상시험 요건을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이는 2015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승인 이후 10년 만에 맞는 가장 획기적인 규제 변화다. 2021년 첫 상호교환성 제품 탄생 이후 지지부진했던 승인 건수가 2025년 한 해에만 22건으로 폭증한 것은 규제 완화가 가져올 '바이오시밀러 제2 전성기'를 예고하는 서막이다.
이제 우리 제약바이오 업계는 '복제약'만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미국 시장의 규제 환경과 보험 체계 속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밀한 생존 전략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다.
◆임상 비용 절감분 '차세대 포트폴리오' 조기 확보에 투입해야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비용과 시간의 효율화다. FDA의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교차 임상시험과 약동학(PK) 연구가 간소화되면, 개발사 입장에서는 제품당 수천만 달러의 비용과 수개월의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된다.
우리 기업들은 여기서 확보한 여력을 단순히 수익성 개선에만 쓸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 파이프라인의 조기 확보에 투입해야 한다. 시장 점유율이 상위 1~2개 제품에 쏠리는 '승자독식' 구조를 고려할 때, 퍼스트 무버(First Mover) 혹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로서의 지위를 선점하기 위한 연구개발(R&D)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PBM 장벽 해소에 맞춘 전략적 약가 및 유통망 구축 절실
규제가 완화되어도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는 관문인 처방급여관리업체(PBM)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다행히 올해 2월부터 발효된 '통합세출법' 등이 PBM의 독점적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우리 기업들은 단순히 저렴한 가격만을 내세우기보다, 미국 내 직접 판매망을 강화하고 PBM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다각적인 유통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상호교환성을 인정받은 제품이 약국에서 약사에 의해 직접 대체 조제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만큼, 현지 약사 및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신뢰도 제고 마케팅에 더 큰 공을 들여야 한다. 규제는 낮아졌지만, 선택의 기준은 결국 '신뢰'와 '공급 안정성'으로 귀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허 덤불' 돌파를 위한 법적·기술적 대응 역량 강화 필요
미국 정부의 지원 사격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사들의 '특허 덤불'과 '에버그리닝' 전략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수백 건의 특허로 방어막을 치는 오리지널 사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특허 분석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단순히 소송에서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사의 투여 경로 변경이나 신규 제형 출시에 대응해 우리 또한 피하주사(SC) 제형 등 독자적인 제형 기술을 확보하는 '바이오베터'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규제 완화의 수혜를 입으려면 우선 특허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정 성분 안주 말고 '질환군 확장'으로 롱런해야
본지가 보도했듯, 향후 특허 만료가 예정된 수많은 의약품 중 바이오시밀러 개발이 진행 중인 품목은 10%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 기업들에 블루오션이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K-바이오가 미국 시장에서 롱런하기 위해서는 특정 성분에 안주하지 말고 종양, 자가면역질환을 넘어 안과질환, 골다공증 등 다양한 질환군으로 파이프라인을 넓혀야 한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가 2025년 상호교환성 승인 목록에서 보여준 성과는 시작일 뿐이다. 정부 또한 국내 기업들이 미국의 규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글로벌 규제 조화(Convergence)를 위한 외교적·정책적 뒷받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미국 시장의 문턱이 낮아진 지금이 K-바이오에게는 거대한 '기회의 창'이다. 규제 완화라는 훈풍을 타고 우리 기업들이 미국 의료 시스템의 비용 절감 주역이자, 글로벌 시장의 확실한 리더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