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헬스코리아뉴스]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표적 항암신약 '벨바라페닙(Belvarafenib)'에 대한 국내 임상 2상에 돌입했다는 소식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특히 이번 임상은 글로벌 빅파마 로슈(Roche)의 전략 자산인 '코비메티닙(Cobimetinib)'과의 병용요법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업계 안팎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는 세계 최고의 항암 기술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 한국의 기술을 파트너로 선택해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현재 글로벌 흑색종 치료 시장은 로슈의 '젤보라프(Zelboraf, 성분명: 베무라페닙·Vemurafenib)'와 '코텔릭(Cotellic, 성분명: 코비메티닙·Cobimetinib)' 조합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암세포는 영리하다. 기존 약물은 암세포의 단일체(monomer)만을 공격하기에, 시간이 흐르면 변종이 생기거나 이합체(dimer)를 형성해 약물을 비웃듯 다시 증식하는 '내성' 문제가 고질적인 한계였다. 로슈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내성 벽을 뚫어줄 '강력한 파트너'가 절실했던 셈이다.
그 해결사로 선택된 것이 바로 한미약품의 '벨바라페닙'이다. '벨바라페닙'은 기존 약물이 놓쳤던 '이합체'까지 선택적으로 억제하도록 설계됐다. 로슈가 자사의 핵심 자산인 '코비메티닙'을 한미의 신약과 섞어 임상을 진행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미의 기술력이 글로벌 오리지널 제품의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유일한 열쇠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신약 주권'의 실체이자, K-제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위상이다.
다만, 로슈(제넨텍)는 현재 '벨바라페닙'의 글로벌 임상 환자 모집을 중단하고 이 약물을 파이프라인에서 제외(Cull)한 상태다. 로슈는 2024년 4월 효율적인 파이프라인 관리를 위해 전체 후보물질의 약 20%를 정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벨바라페닙'의 글로벌 임상 모집도 중단했다. 이는 약물의 효과 문제라기보다는 로슈 내부의 전략적 선택(성공 가능성 및 우선순위 조정)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국내에서 직접 임상 2상을 주도하며 독자 개발에 나섰다. 이는 비록 글로벌 파트너가 전략적 판단으로 글로벌 임상을 잠시 멈췄을지라도, 우리 환자들을 위해 '신약 개발의 끝을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동시에 글로벌 빅파마의 결정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우리만의 '신약 주권'을 지키려는 처절한 사투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눈부신 혁신의 이면에는 서글픈 현실도 공존한다. 한미약품이 '벨바라페닙' 같은 혁신 신약을 내놓기 위해 쏟아부은 R&D 비용은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한다. 반면, 정부는 '건보 재정'이라는 근시안적 잣대로 제약사들의 기초 체력인 약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로슈 같은 글로벌 기업은 막대한 수익을 바탕으로 혁신 신약을 사들이고 파트너를 고르며 시장을 지배하는데, 정작 그 파트너가 된 우리 기업들은 안방에서 '약가 인하'라는 뭇매를 맞으며 R&D 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정부는 '벨바라페닙'이 식약처의 '길잡이'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을 치적으로 내세우기에 앞서, 왜 우리 기업들이 외산 항암제에 의존하는 오리지널 도입에 목을 매는지 직시해야 한다. 혁신은 규제 완화나 단순한 지원 프로그램 몇 개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업이 신약 개발에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수익 구조, 즉 '정당한 약가'라는 산업적 토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벨바라페닙'이 NRAS 변이 흑색종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듯, 정부의 정책 또한 제약산업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 빅파마가 우리 기술에 손을 내미는 지금이야말로, 정부는 '규제자'가 아닌 든든한 '지원군'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혁신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서 제2, 제3의 '벨바라페닙'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