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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브이 포 벤데타 (4)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보여주는 가까운 미래의 영국은 ‘노스파이어(Norsefire)’라는 이름의 당이 일당독재하는 지독한 파시스트 독재국가로 변해 있다. ‘Strength through Unity Unity through Faith(단결을 통한 힘 충성을 통한 단결)’이란 노스파이어당의 구호가 런던 시내의 모든 곳을 점령하고 있다. 

 

‘히틀러’의 이름을 닮은 아담 슈틀러라는 ‘총통’이 유일정당인 노스파이어당과 국가를 동시에 장악한다. 슈틀러는 연설 스타일도 히틀러의 오마주다. 영국의 왕정도 끝났는지 왕조차 보이지 않는다.

히틀러의 재림 격인 슈틀러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 가치인 ‘안전’ ‘질서’를 위해 ‘자유’ ‘인권’과 같은 다른 가치들은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 안전과 질서 외 다양한 가치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다른 가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정치적 반대자들은 수용소에 격리된다. 

히틀러와 슈틀러는 ‘진시황제의 아이들’이기도 하다. 진시황제는 법가사상서와 농사, 점복占卜에 필요한 책을 제외한 모든 ‘쓰잘데기 없는’ 책들을 불태워버리고, 그 ‘쓰잘데기 없는’ 이론들을 콩이야 팥이야 따져대는 선비들을 파묻어버렸다. 가히 파시즘의 태두라 부를 만하다. 

파시스트들이 내세우는 단결(Unity)과 충성(Faith)은 합리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한 이성이 마비된 ‘눈 먼 행동’만이 필요하다. 이 때문인지 히틀러가 편찬한 나치즘 이론서는 히틀러의 작품인지 진시황제의 어록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히틀러는 그의 이론서에 이렇게 적어놨다. 

“이성은 행동에 의심을 품게 만들며, 이성적인 분석은 행동을 늦추고 망설이게 한다. 행동은 그 자체가 덕이며 인간의 고귀한 본능이다.” 그렇게 인간의 합리적 이성 대신 인간의 본능과 의지에 따른 실천적 행동을 요구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파시즘’의 연원은 진시황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참으로 유구하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이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깊은 물과도 같다. 파시즘(Fascism)의 어원은 라틴어 Fasces(나뭇가지들)라고 한다. 가는 나뭇가지들을 한데 묶어놓고 그 위에 도끼를 얹어놓은 문양을 가리킨다. 

로마의 상징으로도 사용되는 이 문양은 가는 나뭇가지도 한데 뭉치면 도끼로 내리쳐도 버틸 수 있다는 ‘단결’의 상징이다. 1930년대 스페인의 극우정당 팔랑헤(Falange)당도 화살 5개를 한 묶음으로 묶어놓은 문양을 당의 로고로 사용했다.

끔찍한 기억으로 역사 속에 봉인해 놓았던 ‘파시즘’은 좌절과 낙담, 불안의 시기가 닥쳐오면 어김없이 봉인이 해제돼 그 모습이 다시 드러나곤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중요하다고 믿다가도 좌절하고 낙담하고, 불안해지면 무기력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거대한 ‘전체’라는 힘에 귀의하고 싶어지곤 한다. 이렇게 ‘다수’의 힘에 올라탄 사람들이 늘어나면 ‘소수’를 향해 쏟아내는 증오와 혐오도 함께 증가한다. 

‘인류종말의 시계(Doomsday Clock)’라는 것이 있다. 인류의 멸망을 자정으로 놓고 핵무기, 기후변화, 새로운 생명과학기술 등이 현재 인류를 얼마나 멸망에 가깝게 이끌고 있는지를 매년 분침과 초침을 조정해 발표한다. 올해 멸망시계는 11시58분20초를 가리킨다. 지난해보다 20초 더 가까이 다가섰다. 멸망까지 100초밖에 안 남은 절박한 시점이다.

‘인류종말의 시계’가 인류의 종말을 경고한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종말을 알려주는 ‘파시즘 시계’도 하나쯤 필요할 듯하다. 영화는 ‘노스파이어’당이 지배하는 가까운 미래에 영국의 ‘파시즘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을 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설마 자유민주주의의 챔피언인 영국이 파시즘 국가가 될까 싶기도 하겠지만 불행히도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1930년대 히틀러가 등장했던 독일이 그랬다. 1980년대에 이미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이 설마 다시 박정희 시대로 회귀할까 싶지만 그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사회에서도 언젠가부터 약자와 소수, 그 차이를 비꼬는 ‘일베’ 수준의 증오와 혐오가 기승을 부린다. 그 거대한 증오와 혐오에 정치가 올라타서 성공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파시즘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파시즘 시계’가 있다면 현재 우리사회의 ‘파시즘 시계’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은 어디쯤 와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개발독재 시대의 ‘파시즘 시계’가 11시58분쯤을 가리키고 있었다면 2022년 지금은 11시56~57분쯤 되는지도 모르겠다. 설마 그렇겠느냐마는 그렇지 말라는 법도 없어 보인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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