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어른들의 '불장난' 전쟁놀이

이태상

인생이란 생각하는 사람에겐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겐 비극이란 말이 고대 그리스 격언에 있듯이, 내가 어렸을 때 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개미처럼 아주 조그맣게 보였었다. 그리고 국군의 날 군인 아저씨들이 시가행진하는 것이 그냥 병정놀이 같았다. 그리고 커서 결혼 후 여름 바닷가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 때면 어른들이 돈 많이 벌겠다고, 유명해지겠다고, 감투 쓰겠다고 애쓰는 것이 어린 아이들이 열심히 모래성 쌓는 거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인정이 많아서였는지 나도 점심을 못 가지고 오는 같은 반 친구가 있으면 같이 나눠 먹고 때로는 도시락째 주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헐벗은 거지아이를 보면 내가 입었던 옷까지 벗어주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야단맞고 했던 기억이 있다. 명절 때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더욱 가엾게 느껴졌다. 추석 다음날엔 학교 변소가 초만원이었다. 평소에 잘 못 먹다가 모처럼 기름진 음색을 먹었거나 과식한 탓이었으리라.

좀 더 생각해보면 6.25 한국동란 때 어른들의 '불장난' 전쟁놀이로 얼마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며 엄청나게 수많은 비극과 불행이 닥쳤는가.
 
다른 사람들 얘기는 그만두고라도 내가 겪은 일들만으로도 인생이 '비극'인 동시에 '희극'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8.15 해방 전 일정 시대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공출한다고 낙하산줄 만든다는 칡넝쿨을 걷으러 산비탈을 기면서 손과 팔 다리가 가시에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루는 학교. 방공호 속에 들어가 속옷을 벗어 이를 잡아서는 종이봉지에 넣으라고 했다. 제일 많이 잡는 아이한테는 상까지 준다고 해서, 나는 남보다 더 많이 잡아보겠다고 한 손에 종이봉지를 들고 또 한 손으로만 이를 잡는 대신 종이봉지를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부지런히 이를 잡아 종이봉지에 넣었는데, 시간이 다 돼서 선생님께 드리려고 종이봉지를 들여다보니 이가 한 마리도 없는 게 아닌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추운 겨울 날 내복을 벗어 이를 잡으니 이도 추위를 못 견뎌 따뜻한 곳을 찾아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갔음에 틀림없다.
 
요즘은 미국 학교에서도 무료로 배부되고 있다는 콘돔이 주로 성병예방이나 피임용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7년 전 8.15 해방 직후에는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아주 색다르고 별스런 장난감이었다. 그 때 나는 서울 동대문 밖 종암동에 있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학생 수가 제일 많다는 종암국민(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자 그 동네 살던 일본인들이 두고 떠난 적산가옥에 코쟁이 미국인들이 살게되면서부터 우리 어린이들은 보물 찾듯 그런 집 쓰레기통을 뒤져 오그라든 '고무장화'(지금 생각해보니 요샛말로 콘돔)를 고무풍선으로 신나게 불고 다녔다.

오늘날 어린이들은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전자오락 비디오 게임이다 컴퓨터다 별의 별 장난감을 다 갖고 놀지만 그 때 우리가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래야 좀 두꺼운 종이로 만든 딱지, 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나 자치기, 엽전을 종이로 싸서두 끝을구멍으로 내어 갈래랄래 찢어서 이를 많이차기 내기하는 제기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린이들에게 너무도 신기하고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것이었다.
 
이런 일들을 돌이켜보면 모두 희극이고 느끼자면 다 비극 아닌가. 아마도 느끼기를 너무 심하게 했더라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인생를 비관해 염세자살을 하고 말았으리라. 그리고 인생이 희극일 뿐이라고 생각했더라면 허무주의 nihilism에 빠져 케세라 케세라 될대로 되라며 취생몽사醉生夢死했으리라.
 
그러나 내 나름대로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온 데는 내가.일찌감치 제3의 결론을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은 물론 희/비극임에 틀림없지만 그보다는 모험이란 생각에서 매사를 탐험하듯 용기와 신념을 갖고 열정으로 살아왔다. 남들이 다안 된다고 엄두도 못내는 일일수록 더 해보고 싶었다. 남들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새로 길을 만들어가면서 살아보고 싶었다.
 
어차피 인생이 소꿉놀이 같다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매사에 너무 심각할 것도 없지 않을까. 그래도 각자 제 멋대로 제 가슴 뛰는대로 살아보는 것 이상 없지 않겠나 싶다. 프로이드도 성욕 애욕을 의미하는 '리비도 libido'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자, 이제, 앞에. 언급한 콘돔으로 돌아가 이 단어 풀이 좀 해보리라.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기구로서의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리라.
 
영어로 'con'이라 함은 라틴어로 반대한다는 뜻의 'contra'의 약자이고 우리말로 '돈 놈'의 약자 '돔'과 함께 '콘돔'이란 단어가 생겼을 법 하다. 아니면 조건부란 뜻의 'conditional'의 약자인 'cond'에다 산스크리트 범어의 '옴' 자를 갖다 붙여 잡스러움이 붙지 않고 엄마, 어머니의 '엄'의 변형 '옴' 자로 세상 모든 것의 근본을 찾아 순간순간의 삶을 사랑으로 채워보라는 것 아닐까. 그도 아니면 마음의 반성 또는 집중상태를 가리키는 '생각하는 모자 thinking cap'를 쓰고 아니 끼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는 뜻이었으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작성 2023.06.03 11:00 수정 2023.06.0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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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