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AP/뉴시스]미국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절(낙태)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번복한 24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여성이 임신중절 찬성 팻말을 들고 시위하다 눈물을 보이고 있다. (출처: 뉴시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미국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절(낙태)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번복한 24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여성이 임신중절 찬성 팻말을 들고 시위하다 눈물을 보이고 있다. (출처: 뉴시스)

50년 만에 낙태권 판결 뒤집어

낙태권 존폐 결정 州 권한으로

州 과반은 낙태 금지·제한 전망

[천지일보=안채린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미 전역 임신 6개월 이전 낙태를 헌법상 인정한 이른바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이로써 낙태권 존폐 결정 권한은 각 주 정부 및 의회로 넘어갔다. 이를 두고 미국의 50개 주가 낙태를 두고 어떠한 입장을 보일지 주목된다.

대법원은 24일(현지시간)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의 낙태금지법을 유지할지 여부에 대한 표결에서 ‘6대 3’으로 유지를 결정했다. 이날 대법관들은 임신 24주 내 낙태를 합법으로 규정한 로 판결은 ‘미국 헌법이 낙태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이날 공개된 다수 의견문에서 “우리는 ‘로 대 케이시’ 판결을 파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헌법은 낙태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권리는 수정헌법 14조의 적법 절차 조항을 포함해 어떠한 헌법 조항에 의해서도 절대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로 판결은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 그것의 추론은 유난히 약했고, 그 결정은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낙태 문제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가져오기는커녕 ‘로 대 케이시’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분열을 심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헌법에 유의해서 낙태 문제 결정을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줄 때”라고 덧붙였다.

지난 1971년 텍사스주에서 성폭행으로 임신을 하게 된 한 여성이 낙태 수술을 거부당하자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여성은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며 ‘헨리 웨이드’라는 이름의 텍사스주 댈러스 카운티 지방검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이 사건은 ‘로 대 웨이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에 미국 대법원은 지난 1973년 1월 22일 여성의 낙태권이 미국 수정헌법 14조 상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7대 2’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태아가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약 임신 28주) 전까지는 여성이 어떤 이유에서든 임신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의학의 발전으로 현재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약 23∼24주차로 봐 왔다.

이후 지난 1992년 ‘플랜드페어런드후드 대 케이시’ 사건 때 낙태권 보장이 재확인되는 등 미국 내에서 낙태 합법화가 본격적으로 보장된 발판이 마련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이 로 판결에 반하는 미시시피주 법률에 대한 심리에 들어가면서 이번에 결국 판결이 완전히 뒤집혔다.

미시시피 낙태금지법은 로 판례보다 제한된 기간인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데다가 강간이나 근친상간까지 예외로 두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이에 위헌법률심판이 제기됐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부당한 법률이라는 판단을 받은 뒤 대법원의 심사 선상에 오른 것이다.

대법원은 ‘로 및 플랜드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판결을 폐기할지 여부에 대한 표결에선 ‘5대 4’로 폐기를 결정했다.

◆‘보수 우위’ 대법원 구도 재확인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 및 8명 대법관이 보수 성향 6명, 진보 3명으로 구성돼 보수에 무게가 실리면서 나온 판결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직 보수 성향 대법관 중 3명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임명됐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브렛 캐버노 등 대법관 3명 모두 로 판결 폐기에 찬성했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미시시피주 낙태금지법 유지에는 찬성했으나 로 판결을 폐기하는 데 대해선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진보 성향의 연방 대법관 3명은 이번 판결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스티븐 브라이어 등 진보성향 대법관들은 소수의견에서 “‘낙태 정책 결정을 주 정부에 돌려줌으로써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다수 의견에 대해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다른 권리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 대법관은 “그렇다면 피임이나 동성결혼에 대한 권리는 무엇이냐. 법원이 그러한 권리들도 없애는 게 ‘양심적으로 중립적’이 되는 것이냐”며 “이 모든 사례의 요점은 법원이 권리에 관한 모든 것을 주에 맡길 때 중립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법원이 50년 동안 여성이 갖고 있던 권리를 박탈할 때 법원은 ‘양심적으로 중립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것은 권리를 행사하길 원하는 여성들에 맞서 편을 드는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미국 전체 50개 주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낙태를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CNN 방송은 절반의 주가 낙태 권리를 박탈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 가운데 약 6개 주의 경우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시행되도록 조건부 규정을 담은 낙태 금지법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전체 주의 절반가량이 낙태를 금지하거나 급격하게 제한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워싱턴 DC 및 16개 주의 경우에는 낙태권을 보장하고 있어 이번 판결로 미국 내에서 낙태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선거 쟁점이 되면서 정치권의 논쟁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 놓았다”면서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2일 미시시피주 낙태금지법 위헌 여부 심리 결과를 담은 대법원의 판결문 초안이 폴리티코 보도를 통해 유출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발에 나서기도 했다. 또 낙태약 구매를 용이하게 하거나 다른 주에서 낙태 시술을 받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등 이번 판결에 대응한 행정명령 등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폭스 뉴스에 출연해 이번 판결에 대해 “헌법에 따른 것”이라면서 “오래전에 줘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 등도 환영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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