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에 항의하는 사람들 [EPA=연합뉴스]
영국 보수당에 항의하는 사람들 [EPA=연합뉴스]

감세안 발표로 입지가 크게 흔들린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집권 보수당 의원들의 압박에 밀려 감세안 일부 내용의 의회 처리를 연기할 가능성이 커졌다.

연합뉴스는 텔레그래프(2일자)를 인용, 트러스 총리의 영국 정부가 소득세 최고세율 45% 폐지안을 다음 달 23일 감세안 자금 조달을 위한 중기 재정 계획이 발표된 이후에나 하원에서 표결 요청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표결은 12월까지 미뤄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트러스 정부가 하원 반대 세력에 한발 물러서 양보하게 되는 셈이 된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450억파운드(70조원) 규모의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발표했으나 감세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 방안은 제시하지 않아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특히 소득세율 45% 폐지안이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45% 세율이 폐지되면 40%가 소득세 최고세율이 된다.

트러스 총리(오른쪽)와 콰텡 재무장관(왼쪽) [EPA=연합뉴스]
트러스 총리(오른쪽)와 콰텡 재무장관(왼쪽) [EPA=연합뉴스]

45% 세율이 적용되는 소득 구간은 영국 성인 인구의 1%가량인 50만명에게만 해당하지만, 이들이 워낙 고소득층이라 세입 규모는 60억파운드(9조6000억원)에 이른다. 

45% 세율 폐지안의 의회 처리 연기 언급은 보수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마이클 고브 전 주택부 장관은 이날 45% 세율 폐지안에 대해 '잘못된 가치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혹평하고, 감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 차입을 늘리는 것은 보수당답지 않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현재 하원 의원 최소 13명이 공개적으로 감세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 소식통은 보수당 의원 중 많게는 70명이 반대표를 던질 생각을 하고 있으며 45% 세율 폐지안을 1년 미루자고 촉구하는 의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당초 의회 표결은 이르면 다음 주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표결이 연기되면 이 안 자체가 보류될 수 있다는 전망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섣부른 감세안 발표로 트러스 총리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엄'이 최근 벌인 온라인 설문에서 트러스 총리의 업무 수행 지지율은 18%에 그쳤다. 그가 업무를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55%에 달했다.

​영국 파운드화와 미국 달러화 지폐[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영국 파운드화와 미국 달러화 지폐[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런 가운데 트러스 총리는 BBC와 인터뷰에서 감세안 자체는 고수한다면서도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트러스 총리는 "우리가 발표한 패키지 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초석을 더 잘 다졌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이로부터 교훈을 얻었으며 앞으로는 더 잘 기반을 다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45% 최고세율 폐지안에 대해서는 세입이 크지 않은 데다 이 구간이 조세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러스 총리는 이 안을 패키지에 넣은 것은 쿼지 콰텡 재무장관의 결정이며 전체 내각과 사전에 논의하지는 않았다고도 말했다.

나딘 도리스 전 문화부 장관은 트러스 총리의 이 발언을 두고 "자신의 장관(콰텡 장관)을 버스 아래로 내던지는 일"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