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챗지피티(ChatGPT)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항암제와 대사질환 치료제를 중심으로 신약 연구개발(R&D)을 진행해 온 유한양행이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을 겨냥한 신약 개발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는 저분자 TREM2(골수세포2 발현 촉발 수용체) 작용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며 중추신경계(CNS) 영역으로 신약 포트폴리오 확장을 노리는 모양새다.
19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뇌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 표면의 TREM2 수용체를 활성화하는 바이사이클릭 융합환 유도체 기반의 저분자 화합물 기술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얻기 위해 특허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유한양행이 표적으로 삼은 TREM2는 뇌 속 면역 기능을 담당하는 미세아교세포 표면에 주로 존재하는 수용체 단백질이다. 미세아교세포는 뇌에 침입한 불순물이나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독성 단백질 찌꺼기를 먹어 치워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TREM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기능이 떨어지면 미세아교세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알츠하이머병 발병률이 정상 수준보다 최대 3배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약물을 통해 TREM2를 자극해 활성화하면 미세아교세포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나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는 식작용 기능이 촉진된다.
유한양행은 알츠하이머병뿐만 아니라 파킨슨병, 전두측두엽 변성, 헌팅턴병, 나수-하코라병, 다발성 경화증,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뇌졸중 등 다양한 신경계 질환에 TREM2 작용제 후보물질을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유한양행은 프테리딘과 피리도피리미딘 등 두 개의 고리가 융합된 화학 구조를 기본 골격으로 삼아 총 172종의 TREM2 활성 유도체 화합물을 합성했다. 초기 후보물질군에서는 평면적인 고리 구조를 주로 사용했으나, 후반부 물질들로 갈수록 입체적인 구조를 접목해 약물이 체내에서 잘 녹고 뇌 조직으로 잘 흡수되도록 물리화학적 성질을 개선했다.
회사는 도출한 화합물들의 약효를 확인하기 위해 인간 TREM2 수용체를 발현시킨 세포에 약물을 처리한 뒤, 세포 내 신호전달 매개체인 '비장 티로신 키나아제(Syk)' 단백질의 인산화 정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172개 화합물 중 130종이 50나노몰(nM) 이하의 낮은 농도에서 수용체 신호를 절반 이상 활성화하는 효능을 보였다. 특히 이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43종은 5.0nM 이하의 미량으로도 수용체를 작동시키는 고활성 물질(A등급)로 분류됐다.
중추신경계 약물의 핵심 관문인 뇌혈관장벽(BBB) 통과 능력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생쥐에 후보물질을 투여한 뒤 15분과 60분 시점에 혈액과 뇌 조직을 채취해 약물 농도 비율(B/P ratio)을 분석한 결과, 약물이 혈관에서 뇌 조직으로 원활하게 전달돼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REM2 항체 신약 잇단 고배 … 대안으로 떠오른 '저분자 화합물'
유한양행이 주사제 형태의 항체가 아닌 먹는 알약 형태의 저분자 화합물로 TREM2 작용제를 개발하는 것은 최근 글로벌 신약 개발 시장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 다국적 제약사들은 단일클론항체 기반으로 TREM2 표적 치료제 개발을 시도했으나 연이어 임상에서 고배를 마셨다.
애브비와 앨렉터가 공동 개발하던 알츠하이머병 항체 후보물질 'AL002'는 임상 2상에서 인지기능 저하를 늦추지 못해 개발이 중단됐다. 다케다와 디날리가 개발하던 'DNL919'는 임상 1상 단계에서 안전성 문제 등으로 중단됐으며, 노바티스의 항체 후보물질 '리포네바트(VHB937)' 역시 최근 루게릭병 임상 2상에서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해당 적응증 개발을 접었다.
항체 치료제들이 잇달아 실패한 주된 배경으로는 낮은 뇌혈관장벽 투과율과 함께 이른바 '용해성 TREM2(sTREM2) 포획 현상'이 꼽힌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속 아밀로이드 플라크 주변에는 세포 표면에서 잘려 나간 TREM2 조각(sTREM2)들이 대량으로 떠다니는데, 항체 약물은 실제 목표물인 세포막에 붙어 있는 진짜 TREM2 수용체에 도달하기 전에 이 조각들에 먼저 달라붙어 소모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약물이 엉뚱한 가짜 표적에 붙어 무력화된 것이다.
이러한 항체 치료제와 달리 저분자 화합물은 분자 크기가 작아 뇌혈관장벽을 통과하기 쉬울 뿐 아니라, 잘려 나간 수용체 조각에는 반응하지 않고 미세아교세포 막에 붙어 있는 온전한 TREM2 수용체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한다. 약물이 중간에 소모되지 않고 목표 세포까지 도달해 청소 기능을 유도할 수 있는 방식이다.
실제 미국 바이오기업 비질 뉴로사이언스가 개발한 경구용 저분자 TREM2 작용제 'VG-3927(현재 과제명 SAR448851)'은 임상 1상 시험에서 혈장 대비 뇌척수액 농도 비율이 0.91로 측정돼 높은 뇌 침투율을 보였고, 약 50%의 뇌척수액 내 sTREM2 감소 효과를 입증했다. 기존 아밀로이드 표적 항체 치료제의 주요 부작용인 뇌부종 및 미세출혈(ARIA)과의 연관성도 보고되지 않았다.
이러한 임상 결과를 눈여겨본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는 지난해 8월 비질 뉴로사이언스를 4억 7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사노피는 현재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SAR448851의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차곡차곡 쌓은 뇌질환 R&D 인프라 … 항암·대사 넘어 CNS 영토 확장 기대
유한양행은 아직 자체 도출한 TREM2 작용제 후보물질들을 회사의 공식 신약 파이프라인 목록에 반영하지 않았다. 현재 유한양행의 공식 파이프라인은 표적항암제, 대사질환(비만·대사이상 지방간염), 면역질환, 신규 모달리티 등 4대 분야 총 29개 과제로 구성돼 있으며, 중추신경계 질환은 별도의 대분류로 편성돼 있지 않다.
그러나 회사가 이미 수년 전부터 저분자 화합물을 뇌 속으로 전달하는 설계 기술과 뇌질환 연구 인프라를 축적해 온 만큼, 향후 정식으로 신약 파이프라인에 이름을 올리고 개발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유한양행은 앞서 지난 2018년 GC녹십자와 공동연구를 통해 뇌혈관장벽을 투과하는 신경병증성 고셔병 치료 저분자 화합물 후보물질 'YH35995'를 확보한 바 있다. YH35995는 현재 임상 1상 시험이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다.
'포스트 렉라자'의 핵심 주자로 꼽히는 HER2 표적항암제 'YH42946' 역시 뇌전이 환자에 대한 치료 효과를 앞세운 후보물질로, 내년 초 임상 1/2상 파트2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에 더해 회사는 국내 바이오벤처 기업 아임뉴런바이오사이언스와 손잡고 지난 7월 성균관대 캠퍼스 내에 지하 3층~지상 8층 규모의 CNS연구센터를 준공했다. CNS연구센터는 뇌과학을 비롯한 바이오 분야 연구와 신약 개발을 위한 R&BD(연구개발 및 사업화) 생태계 구축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된다.
TREM2 작용제는 뇌 속 면역세포를 조절하는 기전인 만큼 유한양행이 기존에 보유한 면역질환 연구 역량을 접목할 수 있고, 경구용 약물이어서 주사제 형태의 알츠하이머병 항체 치료제와 병용요법으로 개발하기에도 적합하다.
특히 앞서 사노피의 비질 뉴로사이언스 인수 사례에서 확인됐듯, 글로벌 빅파마들이 기존 항체 치료제의 한계를 돌파할 대안으로 TREM2 타깃 저분자 화합물을 눈여겨보고 있는 만큼, 향후 전임상과 초기 임상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조기 기술수출(L/O)이나 글로벌 공동개발 등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차세대 뇌질환 치료제를 둘러싼 글로벌 제약사들의 물밑 선점 경쟁이 달아오르는 가운데, 유한양행이 TREM2 경구제를 앞세워 중추신경계 신약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로 뛰어들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