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현재 허가된 CAR-T 치료제는 환자 자신의 T세포를 채취해 유전자를 조작한 뒤 다시 투여하는 '환자 맞춤형' 치료제다. 암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을 인식하도록 설계된 재조합 수용체를 T세포에 발현시켜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표적하고 파괴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일부 혈액암에서는 1회 투여만으로 장기 관해가 나타나 '원샷 치료제'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가 많다. 효과는 강력하지만 환자마다 따로 만들어야 해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길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환자의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면 치료제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기성품(off-the-shelf) CAR-T'다. 건강한 기증자의 T세포를 미리 채취해 유전자를 조작하고 여러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동종(allogeneic) CAR-T다. 환자별로 세포를 채취하고 제조할 필요가 없어 치료 대기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분야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셀렉티스(Cellectis)가 임상 단계 동종 CAR-T 후보물질 2개의 개발을 한꺼번에 중단하면서 큰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특히 한 후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재생의학첨단치료제(RMAT) 지정을 받고 허가를 목표로 pivotal(허가용) 2상까지 진행하던 자산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더한다.
충격적인 지점은 이번 임상 중단의 사유가 뚜렷한 효능 실패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초기 임상에서는 높은 반응률을 기록했고 후속 데이터 공개도 수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회사 측이 급작스럽게 임상 중단을 결정한 것은 다름 아닌 임상 및 상업 환경의 변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셀렉티스는 14일(현지시간) "재발·불응성 B세포 급성림프구성백혈병(B-ALL) 치료 후보 '라스메셀(lasme-cel)'과 재발·불응성 비호지킨림프종(NHL) 후보 '에티셀(eti-cel)'의 임상 개발을 중단한다"며 "올해 들어 B-ALL과 NHL의 임상·상업 환경이 크게 변했다"고 밝혔다.
앞선 치료 단계의 치료 성적이 개선되면서 후기 치료까지 넘어오는 환자 수가 줄고, 이중특이항체와 새로운 세포치료제 등 경쟁 치료법이 빠르게 늘어난 것이 임상 환자 모집과 향후 시장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RMAT까지 받은 라스메셀…허가용 2상 돌연 "중단"
라스메셀은 CD22를 표적하는 동종 CAR-T로, 셀렉티스의 후기 개발 핵심 자산이었다. 회사는 2025년 10월 pivotal 2상 'BALLI-01'을 시작했고, 올해 4분기 첫 중간분석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었다. 2028년 미국 생물의약품허가신청(BLA) 제출도 목표로 제시해 왔다.
올해 6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재생의학첨단치료제(RMAT) 지정을 받았다. RMAT는 중증·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에서 초기 임상근거를 통해 미충족 의료수요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재생의학 치료제의 개발과 심사를 지원하는 제도다.
초기 임상 결과도 기대를 뒷받침했다. 회사가 공개한 1상 자료에 따르면 권장 2상 용량(RP2D)을 투여받은 환자 12명에서 전체반응률(ORR)은 83%였다. 2상에서 목표로 삼은 환자군 9명에서는 ORR이 100%였고, 이들은 모두 이후 조혈모세포이식이 가능한 상태에 도달했다.
미세잔존질환(MRD) 음성 완전관해 또는 불완전 혈액학적 회복을 동반한 완전관해에 도달한 환자의 중앙 전체생존기간은 14.8개월이었다.
올해 6월 유럽혈액학회(EHA 2026)에서도 최종 1상 결과가 발표됐다. 당시 연구진은 치료 선택지가 거의 남지 않은 재발·불응성 B세포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에서 깊은 관해가 확인됐고, 일부 환자는 이후 조혈모세포이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회사 측은 지난달 열린 2분기 실적 발표 때까지만 해도 올해 4분기 임상 2상인 BALLI-01 첫 중간분석을 주요 임상 이벤트로 제시했다. 그런 자산이 데이터 실패가 확인되기도 전에 개발 목록에서 빠졌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CD20·CD22 동시에 겨냥한 에티셀도 1상 결과 "유망"
함께 개발이 중단된 에티셀 1상 역시 임상 결과가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에티셀은 CD20과 CD22를 동시에 겨냥하는 이중표적 동종 CAR-T다. 암세포가 하나의 표적 항원을 잃어 CAR-T 공격을 피하는 '항원 회피'를 줄이기 위해 두 표적을 한꺼번에 겨냥하도록 설계됐다.
2025년 미국혈액학회(ASH)에서 발표된 1상 'NATHALI-01' 자료에서 평가 대상 8명의 ORR은 88%, 완전반응률(CR)은 63%였다. 특히 전체 치료 환자 14명 가운데 13명은 이미 CD19 표적 CAR-T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고도 전처치 환자였다.
셀렉티스는 저용량 인터루킨-2(IL-2)를 추가해 CAR-T 세포의 증식과 지속성을 높이는 전략을 시험하고 있었고, 올해 4분기 전체 1상 데이터를 공개할 계획이었다.
지난달 2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회사는 라스메셀과 에티셀의 임상 결과를 "유망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여 만에 두 프로그램이 모두 중단되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았다.
셀렉티스, 동종 CAR-T보다 'in vivo'로 방향 선회
셀렉티스는 앞으로 환자의 몸 안에서 직접 CAR-T 세포를 만들어내는 'in vivo CAR-T'를 포함한 체내 유전자편집 기술에 개발 역량을 모은다는 방침이다.
바이러스 벡터나 지질나노입자(LNP) 같은 전달체를 환자에게 투여해 몸 안의 T세포에 CAR 유전정보를 직접 전달하고, 환자 체내에서 CAR-T 세포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동종 CAR-T도 기증자 세포를 채취하고 체외에서 유전자 조작·배양해야 한다. 반면 in vivo 기술이 성공하면 별도의 세포 채취와 체외 배양·제조 과정을 대폭 줄이거나 없앨 가능성이 있다. 동종 CAR-T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기술인 셈이다.
다만 'in vivo CAR-T'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인 탓에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원하는 세포에 유전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예상하지 못한 세포가 변형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글로벌 제약사의 자금은 빠르게 이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도 'in vivo CAR-T' 확보 경쟁 치열
애브비(AbbVie)는 지난해 in vivo CAR-T 개발사 캡스탄 테라퓨틱스(Capstan Therapeutics)를 21억 달러에 인수했고,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ristol Myers Squibb)는 오비탈 테라퓨틱스(Orbital Therapeutics)를 15억 달러에 사들였다.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에소바이오텍(EsoBiotec)을 최대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의 세포치료 자회사 카이트(Kite Pharma)도 지난해 쇼어라인 바이오사이언스(Shoreline Biosciences)와 맺었던 최대 23억 달러 규모의 동종 세포치료제 공동개발 계약을 종료한 뒤 in vivo 분야 투자를 확대했다. 이어 같은 해 in vivo CAR-T 개발사 인터리우스 바이오테라퓨틱스(Interius BioTherapeutics)를 3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올해에는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오나 테라퓨틱스(Orna Therapeutics)를 최대 24억 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켈로니아 테라퓨틱스(Kelonia Therapeutics)까지 70억 달러 규모에 사들이며 투자를 확대했다. 셀렉티스의 이번 임상 중단은 일련의 시장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동종 CAR-T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알로진 테라퓨틱스(Allogene Therapeutics) 등 여러 회사가 암과 자가면역질환에서 동종 CAR-T 임상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알로진은 대형 B세포 림프종(LBCL)에서 cema-cel의 pivotal 2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임상이 허가됐다.
다만 이번 중단은 CAR-T 경쟁의 기준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환자별 주문제작' CAR-T를 '기성품'으로 바꾸려던 경쟁이 끝나기도 전에, 아예 환자의 몸 안에서 CAR-T를 만드는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셀렉티스의 이번 선택이 아쉬운 이유이자, 향후 세포치료제 시장의 흐름을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