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칼륨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P-CAB)가 미란성 식도염 가운데 식도 점막 손상이 심한 중증 환자와 장기간 재발을 막는 유지요법에서 기존 프로톤펌프억제제(PPI)보다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환자를 대상으로 한 8주 치료에서는 두 계열의 치유율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지만, 중증 환자와 24주 유지요법에서는 P-CAB의 치료 성공률이 더 높았다.
이번 분석에는 HK이노엔의 '케이캡(K-CAB, 테고프라잔·tegoprazan)', 대웅제약의 '펙수클루(FEXUCLUE, 펙수프라잔·fexuprazan)',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큐보(JAQBO, 자스타프라잔·zastaprazan)' 등 국내에서 개발된 P-CAB 3종의 임상시험이 모두 포함됐다. 국산 P-CAB이 일본 다케다제약의 '다케캡(TAKECAB, 보노프라잔·vonoprazan)', 중국 포순제약의 '베이원(Bei Wen·倍稳, 케베프라잔·keverprazan)'과 함께 계열 전체의 임상 근거를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한신경위장관운동학회 전문가 7명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 논문을 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Journal of Neurogastroenterology and Motility' 7월호에 발표했다.
이번 논문은 기존 P-CAB 임상 근거를 정리한 서술적 종설에 연구진이 직접 수행한 미란성 식도염 치료 및 유지요법 메타분석을 결합한 것이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국내에서 테고프라잔과 펙수프라잔, 자스타프라잔 등 3개 P-CAB이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 의료진이 세계적으로 P-CAB을 가장 활발하게 처방하는 집단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논문에는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서승인,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이상표,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철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조유경,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김정환,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오정환, 고신대학교 의과대학 박무인 교수 등 7명이 참여했다. [사진=논문 38쪽 갈무리]국산 3종 포함 11개 임상…중증 환자서 효과 뚜렷
연구진은 보노프라잔, 테고프라잔, 펙수프라잔, 케베프라잔, 자스타프라잔 등 P-CAB 5개 성분과 PPI를 비교한 무작위 대조시험을 분석했다.
미란성 식도염 치유 효과를 비교한 무작위 대조시험은 모두 11건이었다. 약물별로는 보노프라잔 4건, 테고프라잔 3건, 펙수프라잔 2건, 케베프라잔 1건, 자스타프라잔 1건이다.
이 가운데 4주 치료 분석에는 9건, 8주 치료 분석에는 10건이 포함됐다. 치유된 식도염의 재발을 막는 24주 유지요법 분석에는 보노프라잔 2건과 테고프라잔 1건 등 3건이 활용됐다.
분석 결과, 전체 환자의 4주차 내시경적 치유율은 P-CAB군이 PPI군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두 치료군의 치유율을 비교한 위험비(RR)는 1.04였다. P-CAB 치료군의 치유 가능성이 PPI군보다 상대적으로 4% 높았다는 의미다.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지만 크지는 않았다. 치료 기간을 8주까지 늘리자 위험비는 1.02로 줄었고, 두 계열 사이의 차이도 통계적 유의성도 잃었다.
효과 차이가 커진 것은 식도 점막 손상이 심한 중증 환자에서였다. 로스앤젤레스 분류상 C·D등급에 해당하는 중증 환자의 4주차 치유율은 두 계열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지만, 8주차에는 P-CAB군이 PPI군을 앞섰다. 위험비는 1.09였다.
24주 유지요법의 성공률도 P-CAB군이 PPI군보다 높았다. 전체 환자의 위험비는 1.09였으며, 중증 C·D등급 환자만 분석했을 때는 1.22로 격차가 더 커졌다.
참고로 유지요법 분석에 쓰인 임상시험은 보노프라잔 2건과 테고프라잔 1건이었다. 나머지 세 약물은 유지요법을 다룬 임상시험이 아직 없는 상태다.
자큐보, 4·8주 치유율 모두 높은 수준
제일약품그룹의 연구개발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자큐보정'도 이번 메타분석에 포함됐다.
제일약품의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자큐보정'자스타프라잔 20mg과 PPI 제제인 에스오메프라졸 40mg을 비교한 국내 임상 3상시험에서 자스타프라잔군의 4주차 치유율은 분석 방법에 따라 95.1~97.1%, 8주차 치유율은 97.9~100%로 나타났다.
에스오메프라졸군의 4주차 치유율은 87.7~92.6%, 8주차 치유율은 94.9~97.5%였다. 중증 환자 수가 적어 C·D등급 환자에 대한 효과를 별도로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전체 환자에서는 높은 미란성 식도염 치유율을 보였다.
논문은 자스타프라잔을 포함한 최신 P-CAB들이 현재까지 임상시험과 초기 시판 후 평가에서 뚜렷한 간 안전성 신호를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장기간 사용에 따른 안전성은 추가 연구와 관찰이 필요하다.
케이캡, 유지요법·기능성소화불량서 근거 확대
HK이노엔이 개발한 '케이캡정'은 미란성 식도염 초기 치료뿐 아니라 유지요법과 기능성소화불량, 필요할 때 복용하는 온디맨드 치료 등 여러 영역에서 임상 근거를 축적하고 있다.
HK이노엔이 개발한 '케이캡정'테고프라잔은 P-CAB 가운데 보노프라잔과 함께 24주 유지요법 임상시험 자료를 확보한 약물이다.
치유된 미란성 식도염 환자를 대상으로 테고프라잔 25mg과 PPI 제제인 란소프라졸 15mg을 비교한 국내 연구에서 24주 내시경적 관해율은 테고프라잔군 86.4%, 란소프라졸군 84.1%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테고프라잔이 재발 방지 효과에서 란소프라졸에 비해 열등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기능성소화불량에서도 가능성을 보였다. 로마Ⅳ 기준에 부합하는 환자에게 테고프라잔 50mg을 하루 한 번 8주간 투여한 다기관 단일군 연구에서 만족스러운 증상 개선율은 4주차 74.6%, 8주차 86.7%였다.
효과만큼 눈길을 끈 것은 위 배출 기능이다. 음식물이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속도가 느려지면 더부룩함과 포만감이 생기는데, PPI는 위산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위 배출 기능을 지연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테고프라잔은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이중눈가림·위약 대조시험에서 위 배출 시간에 유의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연구진은 테고프라잔이 강력하고 빠르게 위산을 억제하면서도 위 배출을 지연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능성소화불량 치료에 장점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기능성소화불량 환자의 증상 개선을 확인한 연구는 비교군 없이 테고프라잔만 투여한 단일군 연구라는 한계가 있다. 실제 치료지침에 반영하려면 PPI 또는 위약과 직접 비교하는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테고프라잔은 증상이 나타날 때 약을 복용하는 온디맨드 치료에서도 빠른 효과를 보였다. 에스오메프라졸과 비교한 연구에서 투약 후 30분 안에 증상이 개선된 비율은 테고프라잔군 26.2%, 에스오메프라졸군 16.1%였다.
야간 속쓰림 환자에서는 처음으로 증상이 없는 밤이 나타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테고프라잔군 1.5일, PPI군 3일이었다. 두 군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았지만, P-CAB의 빠른 작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펙수프라잔, 복용 시점에서 장점 두드러져
대웅제약이 개발한 '펙수클루정'은 식사 시점과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다는 편의성이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됐다.
미란성 식도염 환자를 식사 30분 전 복용군과 식후 복용군으로 나눠 펙수프라잔 40mg을 투여한 연구에서 4주차 치유율은 식전 복용군 98.77%, 식후 복용군 100%였다. 2주차 치유율도 각각 95.77%와 97.14%로 비슷했다.
연구진은 식후에 복용한 펙수프라잔의 치유 효과가 식전에 복용했을 때보다 열등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밥을 먹기 전에 약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의미다.
대웅제약이 개발한 '펙수클루정'P-CAB은 약리학적으로 식사 시점의 영향을 적게 받는 계열로 알려져 있다. 펙수프라잔은 미란성 식도염 환자를 대상으로 식전 복용과 식후 복용의 치유 효과를 직접 비교한 임상시험에서 두 복용법 간 효과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번 논문에서 소개된 자료를 기준으로는 복용 시점에 따른 치료 효과를 환자 대상 임상시험으로 직접 비교한 근거가 펙수프라잔에서 제시됐다. 다른 P-CAB에도 같은 계열적 특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결과를 계열 전체에 그대로 적용하려면 약물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펙수프라잔은 위산 역류로 목 이물감과 쉰 목소리, 만성기침 등이 나타나는 후두인두역류질환에서도 가능성을 보였다.
8주간 펙수프라잔과 에스오메프라졸을 비교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두 약물 모두 역류 증상과 후두 소견을 개선했다. 특히 증상이 심한 환자에서는 투여 4주 뒤 펙수프라잔군의 역류증상지수 개선 폭이 에스오메프라졸군보다 컸으며, 만성기침과 쉰 목소리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위식도역류질환 관련 만성기침 환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 연구에서도 두 약물은 기침 관련 삶의 질을 비슷하게 개선했다. 전형적인 위산 역류 증상은 펙수프라잔군에서 더 크게 호전됐다.
식도 외 증상은 위산뿐 아니라 비산성 역류와 감각 과민, 기능성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연구진은 "P-CAB을 모든 환자에게 PPI보다 우선해 사용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며, 적절한 PPI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산 관련 환자에게 선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2차 옵션, 한국은 왜 많이 쓰나
미국소화기학회(AGA)는 최근 임상진료 개정안에서 P-CAB을 표준 용량 또는 2배 용량 PPI 치료에도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에게 권고한 바 있다. P-CAB의 치료 효과가 PPI에 뒤지지 않는데도 미국에서 우선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약값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 P-CAB은 오리지널 처방약으로만 공급되는 반면, 여러 PPI는 저가 제네릭이나 일반의약품으로 폭넓게 이용할 수 있어 P-CAB의 약제비가 PPI보다 상당히 높다.
반면 일본·한국·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여러 P-CAB이 폭넓게 보험 적용을 받아 시판되고 있으며, P-CAB과 PPI의 가격 차이도 상대적으로 작아 임상 현장에 도입하기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
이번 연구 논문의 제목은 'Potassium-competitive Acid Blockers in Gastroesophageal Reflux Disease and Functional Dyspepsia: A Korean Expert Review With Original Meta-analyses(위식도역류질환과 기능성소화불량에서의 칼륨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 자체 메타분석을 포함한 한국 전문가 검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