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바이오 의약품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다. 살아있는 세포를 배양하는 복잡한 공정 탓에 글로벌 빅파마들의 독점 체제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국내 기업을 필두로 한 후발 주자들의 천문학적인 베팅은 이 견고한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제 바이오시밀러는 전 세계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덜어주는 '재정 구원투수'를 넘어, 수십 조 원의 자본이 격돌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바이오시밀러가 가져온 시장의 격변과 '골드러시' 이후 닥쳐올 새로운 생존 과제를 짚어보았다. <편집자 주>
[사진=AI 이미지 생성][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저분자 합성 의약품과 달리 바이오시밀러는 한때 살아있는 세포를 다루는 기술적 난제로 여겨졌다. 실제로 초창기 업계 전문가들은 "바이오 의약품 복제는 불가능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일부 기업들은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는 거대한 베팅을 감행했고 그 결과 바이오시밀러는 현재 글로벌 의약품 산업을 이끄는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고가 정책에 안주하던 글로벌 항체 의약품 시장을 흔들다
바이오시밀러의 역사는 항체 약물의 상용화와 궤를 같이한다. 항체는 면역계 내에서 항원의 자극에 의해 만들어지는 물질로, 이를 모방하거나 인공적으로 제작한 단백질인 항체 약물은 특정 질환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혁신 치료제다.
항체 약물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품목은 1998년 FDA 허가를 받은 로슈(Roche)의 '허셉틴(Herceptin, 성분명 : 트라스투주맙·Trastuzumab)'이다. '허셉틴'은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로 등장해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며 질병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특히 암 및 자가면역 질환 치료에 있어 특정 항원이나 세포 표면 단백질에 매우 높은 특이성으로 결합한다는 점은 기존 치료법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대안이 되었다.
일례로 로슈의 '허셉틴'은 화학·방사선 요법이 아닌 최초의 유방암 표적 치료제로 등장했고, 애브비(Abbvie)의 종양괴사인자 알파(TNFα) 억제제인 '휴미라(Humira, 성분명 : 아달리무맙·Adalimumab)'는 자가면역 질환 유발 인자를 근본적으로 표적하는 사상 첫 번째 약물로 기록됐다.
당시 항체 의약품 시장을 선점한 글로벌 빅파마들은 특허 만료 이후에도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가 고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분자 구조가 단순해 설계도만 있으면 동일하게 합성할 수 있는 저분자 약물과 달리, 단백질 구조체인 바이오 의약품은 살아있는 세포의 배양 조건과 정제 방식에 따라 결과물이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오리지널 기업의 제조 방식 자체가 거대한 기술적 기밀이었기에, 후발 주자가 이를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장벽은 빅파마들에게 특허 만료 이후에도 높은 약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심어주었다.
K-바이오의 승부수, '불가능'의 영역을 깨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의 전망은 우리나라 기업인 셀트리온이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를 선보이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통상 개발 비용이 100억 원 내외인 저분자 합성 제네릭과 달리, 바이오시밀러는 대규모 임상과 전용 설비 구축에만 최대 3000억 원 이상의 자본 투입이 필수적이다. 셀트리온은 규제 가이드라인조차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던 미개척 영역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으며 기업의 사활을 건 베팅을 감행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얀센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레미케이드(Remicade, 성분명 : 인플릭시맙·Infliximab)'의 바이오시밀러인 '렘시마(Remsima, 성분명: 인플릭시맙·infliximab)'다. '렘시마'는 지난 2013년과 2016년 각각 유럽과 미국에서 허가를 취득하며 글로벌 시장에 안착했다. 이는 단순히 신제품의 등장을 넘어, 오리지널 기업의 고가 정책이 지배하던 시장에 본격적인 가격 경쟁 체제를 불러온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국가 재정의 구원투수에서 무한 경쟁의 격전지로
막대한 투자 리스크를 안고 시작된 바이오시밀러는 사실 2013년 '렘시마'가 유럽 시장의 관문을 넘어섰을 때만 해도 시장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치를 훌쩍 넘어섰다. '렘시마'는 유럽 출시 이후 오리지널인 '레미케이드'를 급속도로 대체하며 점유율 70%를 돌파했다. 오리지널과 유효성은 동등하면서 가격은 30~40% 저렴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화로 인해 의료비 지출이 급증하며 재정 압박을 느끼던 유럽 각국 정부와 보건당국에게 바이오시밀러는 재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했다.
'램시마'의 성공 사례는 업계의 회의론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높은 수익성까지 확인되자 기업들은 앞다투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산도스(Sandoz),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같은 신생 강자들이 전체 파이를 키웠고, 화이자(Pfizer), 암젠(Amgen) 같은 글로벌 빅파마와 테바(Teva), 프레제니우스 카비(Fresenius Kabi) 등 제네릭 전문 기업들까지 가세하며 시장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급부상했다.
시장의 열기는 2022년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연 매출 약 200억 달러(한화 약 30조 원)에 달하는 초특급 블록버스터 '휴미라'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수십 조 원 규모의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만 10여 개에 달하는 바이오시밀러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며, 공급자 간 가격 할인 경쟁과 처방집 등재를 둘러싼 고도의 비즈니스 전략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제 바이오시밀러는 고도의 효율성과 자본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완전 경쟁 시장, 즉 레드오션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시장의 파이는 커졌지만, 동시에 수익성은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것이다.
골드러시의 종말, 단순 복제 넘어 '혁신'으로 승부해야
업계의 시선은 이제 마지막 대어인 면역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에 쏠려 있다. 연 매출 40조 원을 상회하는 이 거대 품목의 특허 만료를 앞두고 업계는 시밀러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이면에는 시장 포화와 포스트 '키트루다' 시대에 대한 깊은 우려가 깔려 있다. '키트루다' 이후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견인할 메가 블록버스터의 계보가 사실상 단절되면서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견인할 동력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시장은 이제 먹잇감이 등장하면 수십 개의 제품이 사투를 벌이는 격전지로 변했다. '휴미라' 사례에서 보듯 공급자가 우후죽순 늘어나며 시장내 약가 인하 압력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현재 '키트루다'를 겨냥해 개발 중인 바이오시밀러만 전 세계적으로 무려 28개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바이오시밀러 업계는 항암제 옵디보(Opdivo, 성분명 : 니볼루맙·Nivolumab)'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코센틱스(Cosentyx, 성분명 : 세쿠키누맙·Secukinumab)' 등 조 단위 매출 약물들의 특허 만료로 2028년경 사상 최대 규모의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장을 압도하는 '게임 체인저'급 후속 약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리지널 사들이 피하주사(SC)로의 제형 변경 등을 통해 특허를 연장하는 '에버그리닝 전략'을 강화하면서 시밀러 업체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어서다.
결국 '포스트 키트루다' 시대를 앞둔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의 생존법은 복제가 아닌 혁신으로 옮겨가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 같은 거대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이 의약품 개발의 최신 트렌드인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을 모색하거나 신약 개발로 눈을 돌리는 등 플랜 B에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헬스코리아뉴스에 "글로벌 빅파마들은 이미 SC 제형 변경과 복합제 출시, 새로운 방식의 파트너십과 신기술 확보 등을 통해 복제약 진입을 원천 봉쇄하는 '에버그리닝 2.0'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단순히 가격 경쟁력만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끝났다. 바이오시밀러도 이제는 오리지널보다 우월한 가치를 증명해야만 '수익성 절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