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삼중작용제'의 메커니즘. 식욕을 억제하는 GLP-1, 혈당을 조절하는 GIP, 그리고 지방 연소를 돕는 글루카곤(GLUCAGON) 세 가지 호르몬이 정밀 유도탄처럼 작용하여 고장 난 대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한다. (AI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비만 치료제 시장의 판도를 바꿀 삼중작용제 상용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단순히 덜 먹게 만드는 시대를 넘어, 몸 안의 대사 엔진을 직접 가동해 지방을 태우고 합병증까지 정밀 타격하는 '맞춤형 처방' 시대가 열리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와 일라이 릴리(Eli Lilly)는 '위고비(Wegovy, 성분명 :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와 '젭바운드(Zepbound, 성분명 :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 등 기존 약물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임 체인저'의 지위를 선점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 없는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세마글루타이드'에 아밀린 아날로그(Amylin Analog)인 '카그릴린타이드(Cagrilintide)'를 결합한 복합제 '카그리세마(CagriSema)'를 개발 중이다. 최근 발표된 임상 3상(REIMAGINE-2) 결과에 따르면, '카그리세마'는 제2형 당뇨를 동반한 비만 환자에서 68주 만에 14.2%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며 기존 '위고비(10.2%)'의 효능을 능가했다. 다만 경쟁사인 일라이 릴리와의 직접 비교 임상에서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도 공존해, 향후 허가 과정에서의 전략 변화가 주목된다.
# 48주 만에 24% 감량 … 일라이 릴리 '레타트루타이드'의 진격
이에 맞서는 일라이 릴리의 삼중작용제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 성분명 :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는 역대급 임상 데이터를 쏟아내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임상 2상에서 최고 용량 투여군이 48주 만에 평균 24.2%의 체중을 감량한 데 이어, 최근 공개된 3상 중간 데이터에서는 무릎 골관절염을 동반한 비만 환자의 체중을 최대 28.7%까지 줄이는 괴력을 발휘했다.
이는 기존 이중작용제인 '젭바운드(Zepbound, 성분명 :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가 72주간 보여준 감량 폭을 훨씬 앞당긴 수치다. 특히 투여 환자 전원이 5% 이상 감량에 성공하며 '수술 없는 지방 흡입'이라는 별칭까지 얻고 있다.
의료계와 제약업계는 이들 삼중작용제가 환자별 대사 특성을 반영한 정교한 치료 체계 수립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에너지 소비 열쇠 '글루카곤' 추가 … 입체적 대사 공격
삼중작용제가 이중작용제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글루카곤(Glucagon)'이라는 세 번째 열쇠에 있다.
기존 이중작용제가 식욕을 억제하는 GLP-1과 인슐린 분비를 돕는 GIP를 활용해 '들어오는 양'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면, 삼중작용제는 글루카곤 기전을 더해 '태우는 양'을 늘린다. 글루카곤은 간에 저장된 지방을 강제로 태워 에너지로 쓰게 만든다. 식욕 억제로 살이 찌는 원인을 차단함과 동시에, 몸속 지방 대사 엔진을 직접 가동해 입체적인 공격을 퍼붓는 셈이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처방 가이드라인도 정교해질 전망이다. 혈당 관리와 안정적 감량이 목표인 일반 비만 환자에게는 이미 안전성이 입증된 이중작용제가,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을 앓고 있거나 기초대사량이 극도로 낮은 고도 비만 환자에게는 삼중작용제가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 한미약품 'HM15275', 근육 손실 최소화 및 25% 감량 차별화
국내 기업 중에서는 한미약품의 행보가 단연 돋보인다. 한미약품의 비만 신약 프로젝트 'H.O.P(Hanmi Obesity Pipeline)'의 핵심 파이프라인인 'HM15275(성분명 : HM15275)'는 최근 미국 FDA로부터 임상 2상 계획을 승인받고 첫 환자 투약을 완료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HM15275'는 GLP-1, GIP, 글루카곤 등 세 가지 호르몬을 독자적인 플랫폼 기술로 최적화했다. 특히 강력한 체중 감량(25% 이상 목표)을 달성하면서도, 기존 약물들의 고질적 문제인 '근육량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단순히 체중계의 숫자를 줄이는 것을 넘어, 신체 탄력과 기초 대사량을 유지하고자 하는 환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한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전략이다.
다만, 한미약품이 상업화 과정에서 풀어야할 과제도 적지 않다. 글로벌 비만 시장은 2030년까지 약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빅파마들의 견고한 장벽을 뚫어야한다. 업계는 임상 단계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얼마나 압도적으로 증명하느냐가 글로벌 시장 안착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약품은 2027년 상반기 글로벌 임상 2상을 마무리하고 2030년 신약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삼중작용제는 비만 치료의 폭을 넓혀 환자별 대사 특성에 맞춘 최적의 치료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라며 "단순한 감량 시대를 넘어, 내 몸의 상태에 꼭 맞는 치료제를 선택하는 맞춤형 비만 관리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