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징검다리 당선에 성공했다. 바이든 정부의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만큼,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당선 이전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폐지는 어렵더라고 최소 개편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IRA은 기후변화 대응, 세제 개편, 의료서비스 접근성 개선을 골자로 한 법안으로, 2022년에 통과되었다.
이중 의료서비스 접근성 개선 대상에는 약가 인하가 포함되어 있다. IRA는 미국 공공의료보험기관인 CMS(Center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cices)가 제약사와 협상을 통해 처방의약품 약가를 인하하도록 한다. 미국인들에게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추진됐다.
약가 인하 목록에 포함된 약물 보유 기업들은 ▲CMS와 약가 인하 협상을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특허를 개방하여 복제약과 가격 경쟁을 벌일 것인지 2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IRA에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의약품 특허권에 개입한다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 법안은 시중에 복제약이 출시되지 않은 약물을 약가 인하 협상 대상으로 선정한다. 일명 오리지널 약물이 협상의 타깃인 셈이다.
만약 제약회사가 약가 인하 협상을 거부할 경우, 해당 기업의 의약품은 메디케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의약품 매출액의 최대 90%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약가 인하 협상에 응하거나 복제약과 경쟁을 벌어야 한다. 이와 관련 IRA를 통해 오리지널 약물 보유 기업의 에버그리닝(공격적으로 여러 특허를 출원하여 독점권을 연장하는 행위)을 간접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만약 당선될 경우, 연간 약가 인하 협상 약물을 기존의 20개에서 최대 50개까지 늘려 값싼 의약품의 공급을 촉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IRA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트럼프가 당선된 이상, 앞으로 기업들의 약가 인하 협상 부담은 덜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의약품 인하 정책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의약품의 투명성을 주장하면서 완전 경쟁을 통한 약가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부가 가격을 강제로 내리지 않는 대신 시장을 개방하여 약가 인하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기업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IRA 통과 당시 복제약의 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복제약 업체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업계는 대체로 오리지널 기업들이 약가 인하보다 복제약 기업들과 협상을 통해 복제약의 출시 지연을 선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오리지널의 약가를 최대 80%까지 낮추기로 결정하면서 복제약들의 가격 경쟁력 또한 덩달아 떨어진 것이다.
참고로, 복제약 중 바이오시밀러는 대체로 오리지널 대비 20~30% 낮은 가격으로 판매된다. 따라서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이 최대 80%까지 떨어지면 바이오시밀러는 이보다 더한 84~86%까지 할인해야 한다. 이는 1알 100원 짜리 복제약이라면 14원에서 16원까지 가격이 낮아진다는 얘기다.
당연히 이러한 가격 인하 현상은 미국 정부가 원했던 것 이겠지만, 만약 오리지널 기업이 수익성 악화를 무릎쓰고 시장 지배를 위해 약가 인하를 수용할 경우 복제약 기업 입장에서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복제약의 마진율 감소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복제약의 운명이 오리지널 기업의 선택에 달려있으므로, 국내 기업들의 미국 복제약 시장 진출은 더욱 껄끄러워지는 셈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한 만큼 복제약 기업들의 가격 폭락 걱정은 한숨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터라 오히려 자국 기업들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어 국내 기업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관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며 관세 전쟁을 예고해 왔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다. 바보들, 바보 정치인들이나 관세를 싫어한다. 그들은 멍청하거나 부패한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시 중국산 제품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매기고, 특히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중국 업체의 차에는 1000 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대해서도 10%에서 20%에 달하는 보편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그의 보호무역정책은 어떤 형태로든 국내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