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 소재 바이오기업 '아시디안 테라퓨틱스(Ascidian Therapeutics)' 소속 연구원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아시디안 테라퓨틱스)[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유전자 치료의 무게중심이 DNA에서 RNA로 넓어지고 있다. DNA를 직접 고치는 방식이 영구적 치료 가능성을 앞세웠다면, RNA 편집은 유전정보의 중간 단계인 RNA를 조절해 상대적으로 가역적인 치료 효과를 노린다. DNA를 자르거나 바꾸지 않으면서도 정상 단백질 생산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유전자 치료의 또 다른 축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그 흐름의 최전선에 있는 곳이 미국 보스턴 소재 바이오기업 '아시디안 테라퓨틱스(Ascidian Therapeutics)'다. 아시디안은 RNA 편집 분야에서 가장 앞선 임상 단계 성과를 가진 기업으로 꼽힌다. 대표 후보물질 'ACDN-01'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임상에 진입한 RNA 엑손 편집 치료제다. 여기에 로슈(Roche)와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잇따라 대형 계약을 맺으면서, 아시디안의 플랫폼은 빅파마까지 인정한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엑손 편집의 원리와 차별점 … 질병의 중간 설계도를 바꾼다
해당 기술의 핵심은 RNA 엑손 편집(RNA Exon Editing)이다. 엑손은 유전자에서 실제 단백질 암호를 담는 구간이다. 국내 독자에게는 폐암 치료제 '렉라자(Leclaza, 성분명 : 레이저티닙·lazertinib)' 사례로도 익숙한 개념이다. '렉라자'와 '리브리반트(Rybrevant, 성분명 : 아미반타맙·amivantamab)' 병용요법은 세계 각국에서 EGFR 엑손 19 결손 또는 엑손 21 L858R 치환 변이가 있는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1차 치료제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 '엑손 19 결손'은 EGFR 유전자 안에서 단백질 정보를 담는 특정 엑손 구간에 결손 변이가 생긴 경우를 뜻한다.
기존 표적항암제가 엑손 변이로 생긴 비정상 신호를 약물로 억제하는 방식이라면, RNA 엑손 편집은 문제가 된 RNA 구간 자체를 정상 정보로 바꿔 정상 단백질 생산을 유도한다. 질병을 일으키는 결과물을 막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중간 설계도를 다시 쓰는 접근법이다.
유전자 치료의 새로운 대안 … DNA 직접 교정의 한계 극복
이 때문에 RNA 편집은 기존 유전자 가위가 접근하기 어려웠던 질환을 겨냥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DNA를 직접 자르거나 고쳐야 하는 만큼 표적 정확도, 영구 변형에 따른 안전성, 전달체 용량의 한계를 함께 안고 있다. 특히 원인 유전자가 크거나 변이가 여러 엑손에 흩어져 있는 질환은 하나의 절단·교정 지점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RNA 편집은 이 한계를 RNA 단계에서 우회한다. 단일 염기를 바꾸는 염기 편집과 달리, 여러 엑손을 포함한 비교적 큰 RNA 구간을 정상 정보로 교체한다. DNA를 자르지 않고 세포가 본래 가진 RNA 스플라이싱 기전을 활용한다는 점도 차별점이다. 유전체를 영구적으로 바꾸지 않으면서도, 결함이 있는 단백질 대신 정상 단백질이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RNA 엑손 편집 기술과 기존 유전자 치료의 차이]
기존 유전자 치료(왼쪽)가 유전자의 원본인 DNA를 직접 잘라내거나 수정하는 방식이라면, 'RNA 엑손 편집(오른쪽)'은 단백질을 만드는 중간 설계도인 RNA에서 문제가 되는 엑손(단백질 암호 구간)만을 정상으로 교체하는 방식이다. DNA 자체를 영구적으로 변형하지 않아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정상 단백질 생산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 제미나이를 이용해 제작한 이미지)이 접근이 실제 치료제로 이어진다면 유전의학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유전자 치료는 '망가진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하거나',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자르거나', '비정상 단백질을 약물로 억제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RNA 엑손 편집은 여기에 '잘못 만들어진 RNA 설계도를 교체한다'는 선택지를 추가한다. DNA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단백질 생산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유전자 치료와 표적치료 사이에 새로운 치료 영역을 여는 셈이다.
아시디안 테라퓨틱스, RNA 엑손 편집 치료제 세계 첫 임상 진입
아시디안이 첫 표적으로 스타가르트병(Stargardt disease)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스타가르트병의 원인 유전자인 ABCA4는 크기가 크고 환자마다 변이가 다양하다. 유전자를 통째로 전달하기에는 크기가 부담스럽고, 변이가 여러 부위에 흩어져 있어 단일 염기 편집만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RNA 엑손 편집이 기존 유전자 치료의 빈틈을 겨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에 적합한 질환인 셈이다.
'ACDN-01'은 단일 AAV 벡터로 전달돼 손상된 엑손을 정상 엑손으로 교체하고, 부족했던 정상 길이의 ABCA4 단백질 생산을 복원하도록 설계됐다. 아시디안은 이 방식으로 스타가르트병 환자 상당수의 변이를 하나의 치료제로 포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24년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하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서, 'ACDN-01'은 세계 첫 임상 단계 RNA 엑손 편집 치료제가 됐다. 현재 1/2상 STELLAR 시험에서 용량 증량 평가를 진행 중이다.
비임상 근거도 제시됐다. 'ACDN-01'은 영장류 망막에서 최대 6개월간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RNA 편집을 보였고, 사람 망막 조직에서도 편집이 확인됐다. 미국 내 스타가르트병 환자는 약 3만 명으로 추정된다. 기존 유전자 치료가 충분히 접근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RNA 엑손 편집이 새로운 치료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글로벌 빅파마도 주목하는 편집기술 … 망막 넘어 신장·신경질환까지 확장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글로벌 제약사(빅파마)와의 협력도 이어지고 있다. 로슈(Roche)는 2024년 6월 아시디안과 신경질환 치료제 발굴·개발을 위한 협력 계약을 맺었다. 계약 규모는 선급금 4200만 달러를 포함해 연구·임상·상업화 단계별 마일스톤을 합쳐 최대 18억 달러다. 로슈는 특정 신경질환 표적에 대해 아시디안의 RNA 엑손 편집 기술을 활용할 권리를 확보했고, 아시디안은 해당 계약과 별도로 다른 신경질환 표적과 타 치료 영역에 대한 자체 개발·협력 가능성을 유지했다.
'일라이 릴리(Eli Lilly)'도 2026년 6월 아시디안과 유전성 신장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협력·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최대 19억 달러다. 아시디안은 특정 신장질환 표적에 대해 릴리에 RNA 엑손 편집 플랫폼 사용 권리를 부여했고, 초기 발굴과 일부 비임상 연구를 맡는다. 릴리는 후속 비임상 개발과 임상 개발, 생산, 상업화를 담당한다. 아시디안은 선급금과 개발·상업화 마일스톤, 판매액에 따른 단계별 로열티를 받을 수 있으며, 신장질환 내 다른 표적에 대한 권리는 유지한다.
로슈의 계약 대상은 신경질환이고, 릴리의 계약 대상은 유전성 신장질환이다. 아시디안의 RNA 엑손 편집 기술이 리드 후보물질 'ACDN-01'이 겨냥한 망막질환을 넘어 다른 장기와 질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생산 측면에서도 아시디안은 올해 1월 포지바이오로직스(Forge Biologics)와 'ACDN-01'의 AAV 생산 협력을 맺었다.
다니엘 래섬(Daniel R. Latham) 아시디안 최고사업책임자(CBO)는 "거의 모든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편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적응증 선택의 신중함을 언급한 바 있다. 기술의 확장 가능성이 크더라도, 실제 개발에서는 표적 조직, 전달체, 질환의 진행 속도, 치료 효과의 지속 기간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도 RNA 편집 영역에 도전 … 알지노믹스 대표적
국내 바이오 업계 역시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에 발맞춰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알지노믹스다. 알지노믹스는 자체 개발한 RNA 치환 효소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을 이끌어내며 RNA 편집 영역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일라이 릴리(Eli Lilly)와의 공동 연구 및 전문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간질환을 비롯한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에 착수하는 등 국내 기술력이 차세대 유전자 치료제 시장의 주류 트렌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빅파마들이 RNA 편집 기술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베팅을 이어가는 것은 유전의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머지않았음을 시사한다. 기존 유전자 가위가 가진 '영구적 유전자 변형'이라는 잠재적 위험성과 '전달 용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DNA라는 원본 설계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대형 유전 질환이나 다중 변이를 원천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은 의료 현장과 제약바이오 업계 모두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결국 RNA 편집이 완전한 유전자 치료제의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아시디안의 'ACDN-01'이 진행 중인 STELLAR 임상 결과를 비롯해, 알지노믹스 등 후발 주자들이 내놓을 후속 데이터의 안전성과 지속성에 달려 있는 셈이다.
DNA와 RNA
'생명의 설계도'로 불리는 DNA(디옥시리보핵산)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 정보를 장기적으로 저장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두 줄의 이중나선 형태를 띠고 있어, 유전 정보가 쉽게 변형되거나 손상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RNA(리보핵산)는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를 복사해 실제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하도록 돕는 '전달자' 역할을 수행한다. RNA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한 줄의 단일가닥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유전 정보를 전달하고 단백질을 만든 뒤에는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는 특성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