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최근 국내 제약업계에 자회사를 흡수합병하는 이른바 '새판 짜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과거 사업 다각화와 외부 자금 유치를 목적으로 계열사를 쪼개어 분리하던 흐름과 달리, 흩어진 역량을 본사 중심으로 다시 결집하는 모양새다.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중대형 제약사들이 잇달아 자회사 흡수합병 카드를 꺼내 들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휴온스, 휴온스생명과학 흡수 … 의사결정 구조 통합
휴온스는 최근 100% 자회사인 휴온스생명과학을 흡수하는 소규모 합병을 결정했다. 두 회사는 23일 합병 계약을 체결했으며, 관련 신고와 절차를 거쳐 오는 6월 23일 모든 합병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번 합병은 신주 발행이 없는 무증자 소규모 합병 방식으로 진행한다. 신주를 새로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합병 완료 이후에도 경영권이나 최대주주의 지분율에는 어떠한 변동도 발생하지 않는다.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불필요한 관리 절차를 생략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 구조를 통합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휴온스의 이번 결정은 두 회사로 분리돼 있던 의약품 사업 구조를 개편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합병을 기점으로 휴온스생명과학이 보유한 오송 공장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 의약품 위탁생산(CMO)을 포함한 제약 사업 전반의 경쟁력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일동제약, 유노비아 재결합 … R&D 자산 온전히 내재화
신약 연구개발(R&D) 역량 강화를 위해 자회사를 떼어냈던 일동제약도 다시 본사로 합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동제약은 지난 13일 이사회를 열고 100% 지분을 보유한 신약 R&D 전담 계열사 유노비아를 흡수합병하기로 의결했다. 일동제약과 유노비아의 합병 비율은 1 대 0이며, 합병 기일은 오는 6월 16일이다.
유노비아는 일동제약이 파이프라인 고도화와 신속한 투자 유치를 도모하기 위해 분사했던 핵심 계열사다. 실제로 지난해 유노비아를 통해 'GLP-1RA' 계열 비만치료제 'ID110521156'의 임상 1상 톱라인 데이터를 성공적으로 도출하고, 'P-CAB' 계열 소화성궤양치료제 '파도프라잔'의 3상 임상시험 진입을 이뤄내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일동제약은 이번 합병을 통해 유노비아의 R&D 자산을 온전히 내재화하고 주요 신약 파이프라인의 상업화와 라이선스 아웃 추진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약가 제도 개편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해 기업 체계를 간소화하고, 집중도 있는 통합 관리로 핵심 과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보령, 지배구조 단순화로 오너 일가 지배력 강화
보령은 지주사 차원의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보령의 지주사인 보령홀딩스와 보령파트너스는 최근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 11일 계약을 맺은 양사는 오는 5월 1일을 기일로 보령홀딩스가 보령파트너스를 완전 흡수합병한다.
이번 합병의 핵심은 사업회사인 보령에 대한 지분 집중과 지배구조 단순화다. 지난해 말 기준 보령파트너스는 보령 보통주 21.10%를, 보령홀딩스는 29.71%를 각각 쥐고 있었다. 합병이 완료되면 보령홀딩스는 보령 지분 50.81%를 확보하게 돼 과반의 지배력을 갖춘 단일 지주사 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특히 보령 지분 20% 이상을 들고 있던 보령파트너스의 자산이 보령홀딩스로 이전되면서, 보령홀딩스 지분 24.01%를 보유한 김정균 대표의 실질적인 그룹 장악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분석된다. 직접적인 지분 증여 없이도 오너 일가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는 가장 효율적인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R&D 집중도 향상·지배구조 단순화 … '경영 효율성 극대화' 방점
이처럼 중대형 제약사들이 잇달아 자회사를 흡수합병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경영 효율성 극대화'에 있다. 과거 제약업계는 막대한 신약 개발 자금을 외부에서 수혈하거나 신사업 진출 시 발생하는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벤처 형태의 자회사 설립 및 물적분할을 적극적으로 선호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바이오 투자 심리 위축으로 외부 자금 조달의 문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분사의 실익이 크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모회사와 자회사가 중복으로 지출하는 인건비, 관리비 등 고정비 부담만 가중되는 부작용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에 본사 차원의 풍부한 현금 창출력을 바탕으로 핵심 R&D 자산을 직접 품고 연속성 있게 지원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 불확실성에 대한 선제적 방어 체계 구축이라는 산업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약가 인하 기조와 원가 상승 압박 등 제약산업을 둘러싼 대내외 악재 속에서, 기업들은 의사결정 단계를 최소화하고 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날렵한' 조직 구조를 원하고 있다. 중복된 사업 부문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오너 경영 체제의 굳건한 확립과 투명한 지배구조 구축 역시 흡수합병을 관통하는 주요 배경이다. 계열사 간 얽히고설킨 복잡한 지분 구조를 지주사 중심으로 단순화하면 경영권 승계 작업이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팽창을 멈추고 내실 다지기에 돌입한 제약사들의 이 같은 행보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버텨내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외형 확장보다는 수익성 방어와 핵심 역량 내재화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잣대가 된 만큼,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위기 대응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약사들의 합병 릴레이는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