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우주 공간이 차세대 바이오의약품의 '글로벌 생산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미세중력(Microgravity) 환경을 활용해 단백질 결정의 순도를 높이고 신약의 안정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우주 의약품 제조를 위한 규제 경로를 공식 발표하며 '우주 바이오권력' 선점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보령과 스페이스린텍 등 선두 주자들이 국제우주정거장(ISS) 실험에 성공하며 우주 헬스케어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고 있다. <편집자 주>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우주 공간이 차세대 바이오의약품의 '글로벌 생산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영국, '스페이스 바이오' 규제 샌드박스 가동
[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영국 정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스페이스-컴 엑스포(Space-Comm Expo)'를 통해 우주 내 의약품 제조(In-orbit Manufacturing)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통합 규제 경로를 세계 최초로 제시했다.
이번 조치는 영국 우주청(UK Space Agency)이 주도하고, 의약품·의료제품규제청(MHRA)과 민간항공청(CAA) 등 주요 기관이 대거 참여하는 범정부 협력 체계다. 핵심은 우주 환경에서 생산된 의약품이 지상에 내려와 실제 환자에게 투약되기까지의 안전성 및 품질 관리 승인 절차를 명확히 하는 데 있다.
특히 영국 정부는 2025년 도입한 '분산 및 모듈식 제조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미세중력 환경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도 지상과 동일한 수준의 엄격한 규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할 방침이다. 이는 우주 생명공학 스타트업인 바이오오빗(BioOrbit) 등 혁신 기업들이 연구 단계에서 상업적 처방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법적 주춧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왜 우주인가? … 중력이 사라지면 '약의 가치'가 올라간다
제약 업계가 우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미세중력 환경이 가진 독특한 물리적 특성 때문이다. 지구상에서는 중력으로 인해 단백질 결정이 침전되거나 대류 현상이 발생해 순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반면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단백질이 지상보다 훨씬 크고 고르게 결정화된다. 이는 단클론 항체, 백신, 인슐린 같은 생물학적 제제의 순도와 용해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 예를 들어 암 치료제의 경우, 우주에서 배양된 고순도 단백질 결정을 활용하면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간편하게 투여할 수 있는 제형 개발이 가능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우주는 단순한 연구 실험실이 아니라, 복잡한 신약의 품질과 성능을 혁신할 수 있는 '첨단 제조 공장'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우주 공간이 차세대 바이오의약품의 '글로벌 생산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K-바이오, ISS 실험 성공하며 '우주 영토' 확장
글로벌 규제 주도권 싸움이 시작된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추격세도 매섭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우주의약 전문기업 스페이스린텍(SpaceLinTec)에서 나왔다.
스페이스린텍은 지난 3월 9일, 자체 개발한 우주의약 연구 모듈 'BEE-PC1'을 통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의 자동 단백질 결정화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상 회수에 성공했다. 국내 기업이 ISS 미세중력 환경에서 단백질 결정을 직접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통 제약사 중에서는 보령(Boryung)이 가장 공격적이다. 보령은 미국 우주 기업 액시엄스페이스(Axiom Space)에 투자하며 합작법인을 설립, 'CIS(Care In Space)' 프로젝트를 통해 우주 헬스케어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여기에 동아ST의 자회사 앱티스(AbTis)가 우주 항체를 이용한 ADC(항체-약물 접합체)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줄기세포 전문기업 입셀(IpSCELL) 역시 우주 환경을 활용한 인공혈액 제조 기술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 "규제가 산업의 속도 결정" … 한국형 가이드라인 시급
전문가들은 영국의 이번 발표가 국내 규제 당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력이 확보되더라도 우주에서 만든 약을 '의약품'으로 승인해 줄 법적 근거가 없다면 상업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계의 한 전문가는 "영국이 세계 최초로 규제 경로를 제시한 것은 우주 의약품 시장의 표준(Standard)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라며, "우리나라도 식약처와 우주항공청이 협력하여 우주 제조 의약품에 대한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품질 관리 기준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