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와 구토로 탈수 증세를 보이는 아이가 보호자와 함께 진료를 받고 있다. [사진=AI 생성][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철에는 아이가 설사나 구토를 시작했을 때 장염의 원인을 추측하기보다 수분을 유지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높은 기온은 살모넬라와 세균성이질 등 일부 세균성 장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장염에 걸린 아이에게는 설사·구토에 땀 배출까지 겹치면서 탈수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커진다.
영유아는 성인보다 몸집이 작고 체액 조절 기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갈증이나 몸의 이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워 보호자가 소변량과 활동 상태, 수분 섭취 여부를 직접 살펴야 한다.
모든 장염이 더울 때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 연구에서는 세균성 장 감염과 바이러스성 장염이 기온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폭염기 소아 장염 대응도 병원체별 차이와 탈수 위험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기온 오르면 세균성 감염 위험 상승…바이러스는 반대 양상
국제학술지 '란셋 플래니터리 헬스(The Lancet Planetary Health)'에 게재된 체계적 문헌고찰·메타분석에 따르면 주변 기온과 장 감염 위험의 관계는 원인 병원체에 따라 달랐다.
연구진은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발표된 연구를 검토하고, 병원체별 분석이 가능한 40편을 메타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소아에 한정되지 않고 전 연령층을 포함했다.
그 결과, 주변 기온이 섭씨 1도 상승할 때 비장티푸스성 살모넬라 감염 발생 위험은 5.1%, 세균성이질은 7.0%, 캄필로박터 감염은 2.3%, 대장균 장염은 4.3% 증가했다. 콜레라는 5.4%, 장티푸스는 15.1% 높아지는 연관성을 보였다.
반대로 로타바이러스 장염은 4.4%, 노로바이러스 장염은 10.6% 감소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로타바이러스 결과는 통계적으로 명확하지 않았지만, 노로바이러스는 기온 상승과 유의한 음의 연관성을 보였다. 연구진은 장 감염의 온도 민감도가 병원체마다 다르며, 특히 세균 사이에서도 차이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 결과는 '날씨가 더워지면 모든 장염이 증가한다'는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여름에는 높은 기온으로 음식이 변질되고 세균이 증식할 가능성이 커지지만, 로타바이러스와 노로바이러스는 다른 계절적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연구진은 고온이 음식 부패와 수계 오염, 병원체 증식, 사람들의 물 섭취 및 위생 행동 변화 등을 통해 장 감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연구마다 지역과 기후, 감염 감시체계, 분석 방식이 달라 결과의 이질성이 컸다는 점은 해석에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일부 병원체는 포함된 연구 수가 적었고 살모넬라·세균성이질·로타바이러스 분석에서는 출판편향 가능성도 확인됐다.
설사·구토에 땀까지…폭염 때 빨라지는 수분 손실
소아 장염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합병증은 탈수다.
설사와 구토가 반복되면 수분뿐 아니라 나트륨과 칼륨 등 전해질도 함께 빠져나간다. 폭염으로 땀 배출까지 늘면 장과 피부를 통한 수분 손실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영유아와 어린이가 성인보다 설사와 구토 이후 탈수에 더 빨리 빠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보호자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신호는 평소보다 뚜렷하게 줄어든 소변량, 마른 입안, 심한 보챔 또는 무기력, 차가워진 손발 등이다.
아이가 울 때 눈물이 거의 나오지 않거나 기저귀가 오랫동안 젖지 않고, 평소와 달리 축 처지는 모습도 주의해야 한다. 영아에게서는 머리 위 대천문이 꺼져 보일 수 있다.
물을 마셔도 계속 토해 수분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혈변, 38.5도 이상의 발열, 중등도 이상 탈수 징후가 나타나면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심한 탈수는 정맥이나 골내 주입을 통한 수액 치료가 필요할 수 있는 응급상황이다.
탈수 여부는 설사 횟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설사 횟수가 많지 않더라도 아이가 거의 마시지 못하고 소변량이 줄거나 반응이 둔해졌다면 상태가 악화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단순한 물보다 경구수분보충액…조금씩 자주 먹여야
경증에서 중등도 탈수에는 경구수분보충액(ORS)이 기본적인 치료 수단으로 사용된다.
2025년 미국소아과학회 학술지 'Pediatrics in Review'에 실린 리뷰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저삼투압 경구수분보충액은 전해질과 포도당을 적절한 비율로 포함한다. 장에서 포도당과 나트륨이 함께 흡수되는 작용을 이용해 물과 전해질 흡수를 돕는 방식이다.
2025년 미국소아과학회 학술지 'Pediatrics in Review'에 실린 소아 경구수분보충액(ORS) 리뷰 논문 화면. 연구진은 경증에서 중등도 탈수의 경우 경구수분보충액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미국 국립의학도서관 펍메드 갈무리]장염의 원인이 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와 관계없이 경증에서 중등도 탈수에는 대부분 경구수분보충액을 사용할 수 있다. 필요한 양은 아이의 체중과 수분 손실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심한 탈수는 우선 정맥주사로 치료해야 한다. 상태가 안정되면 경구수분보충을 시작할 수 있다. 의식이 저하됐거나 입과 비위관을 통한 수분 공급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 장폐색이나 흡수장애 같은 위장관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경구수분보충액을 사용하기 어렵다.
경구수분보충액은 정해진 물의 양에 제품 한 포를 정확히 섞어야 한다. 지나치게 진하거나 묽게 만들면 전해질 농도가 달라질 수 있어 제품에 표시된 조제법을 따라야 한다.
구토가 있을 때는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이기보다 숟가락이나 작은 컵을 이용해 소량씩 자주 마시게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다시 토하면 잠시 기다린 뒤 더 적은 양부터 천천히 시작한다.
주스·탄산·이온음료는 경구수분보충액과 달라
과일주스와 탄산음료, 스포츠음료를 경구수분보충액과 같은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들 음료는 당 함량과 전해질 조성이 소아 장염에 사용하는 경구수분보충액과 다르다. 단순당이 많이 들어간 음료는 장 안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삼투압 작용으로 설사를 악화시킬 수 있다.
CDC는 희석하지 않은 사과주스와 가당 음료, 탄산음료처럼 단순당이 많은 식품을 제한하도록 권고한다.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도 위 배출을 늦춰 일부 아이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아이에게 장염이 생겼다고 무조건 굶길 필요도 없다. 모유를 먹는 영아는 모유수유를 계속하고, 분유나 고형식을 먹는 아이도 섭취할 수 있다면 평소 먹던 음식을 이어가는 것이 좋다.
CDC는 바나나·쌀·사과소스·토스트만 먹이는 이른바 'BRAT 식단'이나 주스와 맑은 음료에 의존하는 제한식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식사법은 정상적인 식사 복귀를 늦출 수 있다. 조기에 평소 식사를 다시 시작하면 장 기능 회복과 영양 상태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구토 억제제와 지사제도 보호자가 임의로 먹여서는 안 된다. 일부 약물은 어린아이에게 호흡 억제나 심장 이상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의료진의 판단이 필요하다. CDC는 소아 장염에서 구토 억제제를 가정에서 일률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권고하지 않으며, 지사제 역시 연령과 상태에 따라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보호자가 먼저 볼 것은 소변량과 아이의 반응
폭염기 소아 장염을 예방하려면 음식물을 충분히 익혀 먹이고 조리한 음식은 실온에 오래 두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식사 전과 화장실 사용 뒤, 기저귀를 교체한 뒤에는 비누로 손을 씻어야 한다.
예방수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증상이 시작된 뒤 아이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경재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설사와 구토가 시작되면 아이의 수분 섭취량과 소변량, 활동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한다"며 "탈수 징후가 보이면 지체하지 말고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폭염기에는 설사·구토와 땀 배출이 겹치면서 아이의 수분 손실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아이가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물을 마실 수 있는지, 소변을 정상적으로 보는지, 평소처럼 반응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