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산복도로에 너머로 지는 노을이 수정아파트를 비추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부산의 현대사를 간직한 동구 산복도로에는 지어진 지 50년도 더 된 수정아파트가 서 있다.
이곳 복도에 들어서면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공용화장실이 이 건물의 연령을 말해준다.
39㎡의 단일면적, 1164세대 규모로 지어진 수정아파트는 고령의 입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지금은 절반가량이 빈집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빈집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던 10년 전, 월세 15만원 수준의 이 낡은 아파트 속 빈집의 가치를 포착한 사진작가가 있다. 윤창수씨다.
윤 작가는 20대 청년 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수정 아파트에서 보냈다.
20년 후 사진작가로 이곳을 다시 찾은 윤씨는 2012년부터 3년간 수정아파트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렌즈에 담았다.
그가 기획한 사진전은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윤씨는 자신의 주된 작업장이었던 수정아파트 4동 A408호를 리모델링 해 2017년 사진갤러리 '갤러리 수정'으로 만들었다.
갤러리 수정 내부 모습. /연합뉴스 제공 윤씨는 "부산에서 사진작가들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는 자기 작업의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며 "낡은 아파트 빈집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사진 갤러리로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찾아오기 힘든 산복도로 낡은 아파트 빈집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기도하지만, 갤러리는 9년째 쉬지 않고 계속 운영되고 있다.
한 달 간격으로 새 전시들이 꾸준히 열리며, 부산에서 사진 동호인들에게 입소문을 타면서 관람객들은 늘어나는 중이다.
지역 신예 작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소중한 데뷔무대가 되기도 한다.
수정아파트 복도에 있는 공용화장실. /연합뉴스 제공 이처럼 '오래된 아파트 빈집'이라는 전시 공간은 관람객들에게 감정의 증폭 장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씨는 "관람객들이 평소 잘 알지 못했던 5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아파트 빈집이라는 공간에 직접 들어오는 것 자체를 살아 있는 박물관에 온 것처럼 좋아한다"며 "평소 접근하기 힘든 아파트 내부라는 공간에 와 볼 기회가 제공된다는 측면에서 갤러리 수정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아파트라는 공간을 전시장으로 사용하면서 입주민들이 불편하시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고 계속해서 주민과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다"며 "빈집으로 넘쳐나는 수정아파트에 젊은 관람객들이 많이 찾으면서 이곳이 조금이라도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는 주민의 말에 큰 힘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부산 수정아파트 4동 A408호에 위치한 수정갤러리. /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