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뇌종양 수술에서 종양을 어디까지 제거해야 할지, 남은 조직이 정상 세포인지 암세포인지를 가리는 일은 환자의 예후와 직결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판단은 수술 중 조직을 떼어내 병리과로 보내는 '동결절편검사(frozen section)'에 주로 의존해 왔다. 조직을 얼리고 자른 뒤 슬라이드로 만들어 판독하기까지 통상 30분가량 걸려, 수술실 의료진은 그동안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외과 강신혁 교수는 카이스트(KAIST) 정기훈 교수팀,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센터에 재직하던 서현석 박사팀(현 고려대학교 인공지능학과 교수)과의 융합 연구를 통해 이 시간을 약 3분으로 줄일 수 있는 해법을 내놨다. 조직을 절제하지 않고 레이저 탐침을 대는 것만으로 세포 단위 영상을 실시간 확인하는 '광학생검(optical biopsy)' 기술이다.
이 기술은 초소형 공초점 레이저 내시경(CLE) 플랫폼 'cCeLL'과 인공지능(AI) 진단 솔루션으로 구현됐다. 탐침을 조직에 대면 현미경 수준의 영상이 즉시 나타나고, AI가 종양일 가능성과 예상 종양 유형을 백분율로 제시해 집도의의 판단을 돕는다.
기술은 카이스트에서 출발한 스타트업 브이픽스메디칼을 통해 상용화됐다. cCeLL 장비는 202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으며,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캐나다 토론토대 성미카엘병원이 참여한 전향적 국제 다기관 임상 결과는 지난 4월 디지털 의료 분야 국제학술지 'npj 디지털 메디슨(npj Digital Medicine)'에 실렸다.
암생물학 연구자에서 출발해 수술실의 애로를 기술로 풀어내는 의사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강 교수. 수술 현장의 고민에서 시작된 이 기술이 뇌종양을 넘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가 걸어온 길과 의료 AI가 열어갈 미래를 들었다.
강신혁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24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진행된 헬스코리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뇌종양 수술 중 실시간 광학생검 기술의 개발 배경과 확장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2026.7.24 (사진=서정필 기자)"암생물학과 임상 현장의 괴리…현장 바꾸는 의료기기에 눈 떴다"
Q. 수술실 현장에 AI 기반 디지털 조직 생검·진단 기술을 접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계기가 궁금하다.
강신혁 교수(이하 강): 본래 뇌종양이 전공이고,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암생물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관련 연구를 해왔다. 그런데 연구를 계속하다 보니 임상의사로서 괴리가 생겼다. 나는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해 낫게 해야 하는데, 암생물학만 깊게 파고들기에는 임상 현장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환자에게 당장 도움이 되는 것을 찾기로 했다. 2010년대 중반 마침 고려대 안암병원이 연구중심병원으로서 의료기기 분야에 힘을 싣던 시기였다. 외과의사로서 수술실에서 사용할 의료기기를 찾다가 카이스트 정기훈 교수가 수술실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직접 연락해 아이디어를 공유했고, 결국 함께 일하게 됐다. 이후 우리 연구실에서 수년간 동물실험과 검증을 거듭하며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샘플 2개 검사에 1시간 지체…의료진 7~8명이 대기하는 구조"
Q. 기존 동결절편검사 방식이 가졌던 한계는 무엇이었나.
강: 외과의사는 수술 중 종양을 떼어낼 때 이것이 종양인지 아닌지, 종양을 다 떼어냈는지를 실시간으로 알고 싶어 한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 방식은 조직을 떼면 운반 요원을 불러 병리과로 보내고, 병리과에서 얼리고 자르고 슬라이드에 붙여 염색한 뒤 보여주기까지 30분이 걸린다. 샘플 두 개만 나가도 수술실의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 수술 보조 인력 등 7~8명이 한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과거 독일의 슈투머(Stummer) 박사가 형광물질 '5-ALA'(성분명 5-아미노레불린산)를 복용하게 해 종양을 붉게 빛나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루약을 물에 타 먹는 이 약은 1회 투여분이 250만 원에 달하는 데다, 일부 종양만 빛나거나 정상 조직까지 함께 빛나는 한계가 있었다. 수술실에서 실시간으로 판단하고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절실했다.
"조직 떼지 않고 레이저로만… AI가 종양 확률 수치화"
뇌종양 유형별 공초점 레이저 내시경(CLE) 영상과 동결절편(FS)·영구절편(PS) 병리영상을 비교한 모습.
각 줄은 왼쪽부터 CLE, 수술 중 동결절편, 최종 진단 기준인 영구절편 영상으로 구성됐다. a는 고등급 신경교종, b는 저등급 신경교종, c는 수막종, d는 뇌하수체 신경내분비종양, e는 신경초종, f는 정상 뇌조직이다.
CLE 영상에서도 세포밀도와 핵 형태, 종양 특유의 배열 등 기존 병리검사와 대응하는 조직학적 특징이 확인돼 수술 중 신속 진단 가능성을 보여준다. 흰색·노란색 화살표는 주요 세포 및 조직 구조를 표시한다. (사진=npj 디지털 메디슨)Q. 이번에 개발한 cCeLL과 AI 진단 솔루션은 수술 현장을 어떻게 바꾸나.
강: 탐침(프로브)을 조직에 대기만 하면 화면에 현미경 수준의 이미지가 바로 나타난다. 조직을 떼어내지 않고 3분 안에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광학생검'이다.
한 환자당 나오는 수십 장의 고화질 이미지를 당시 KIST 바이오닉스연구센터의 서현석 박사팀에 1만 장 이상 전달했고, 이를 기반으로 AI를 학습시켰다.
이제 탐침을 대면 실시간 이미지와 함께 종양일 확률이 모니터에 표시된다. 종양일 경우에는 어떤 종류일 가능성이 높은지도 백분율(%)로 실시간 제시된다. 수술실 안에서 집도의가 즉시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제 임상서 정확도 94%… 야간·응급 수술의 보조 자원 가능성 커"
공초점 레이저 내시경(CLE) 플랫폼 'cCeLL'의 탐침. 수술 중 환자의 종양 의심 부위에 직접 접촉해 세포 단위 영상을 얻는다. [사진=브이픽스메디칼] Q. AI 진단 정확도는 기존 병리과 전문의 판단과 비교해 어느 정도인가.
강: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캐나다 토론토대 성미카엘병원 등과 범부처 20억 원 규모 국책 과제로 다기관 임상을 진행했다. cCeLL의 진단 정확도는 94%로 기존 동결절편검사 92%와 대등하거나 다소 높게 나타나, 동결절편검사에 대한 비열등성을 확인했다. 관련 논문은 국제학술지 'npj 디지털 메디슨'에 게재됐다.
AI 모델의 진단 정확도도 90%를 넘었다. 아직 세부적으로 어떤 종류의 종양인지를 구분하는 능력은 병리 전문의의 판독 수준에 조금 못 미쳐 계속 보완하고 있다.
해외에서 발표해 보면 다른 나라 신경외과 의사들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병리과 의사가 부재하거나 업무가 몰리는 현실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해외 의사들이 한국의 공학 기술로 AI 프로그램을 개발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야간이나 응급수술처럼 병리과 의사가 없는 환경에서 AI가 수술실의 유용한 보조 자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격 병리 진단 세팅 완료…뇌 손상 줄이고 수술 효율 높여"
Q. AI 기술을 통한 수술시간 단축과 원격 병리 진단이 환자와 병원에 주는 실질적인 이점은 무엇인가.
강: 환자 입장에서는 뇌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다. 뇌세포는 한 번 손상되면 재생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알 수 없으니 일단 떼어내 확인했지만, 이제는 조직을 떼지 않고 레이저만 대어 확인할 수 있어 언어장애나 마비 같은 영구적 장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수술시간이 짧아질수록 합병증이 감소한다는 점은 이미 논문으로 입증돼 있다.
병원과 의료진 입장에서도 도움이 된다. 텔레패솔로지(Telepathology·원격 병리 진단) 시스템을 구축했다. 수술실에서 스캔한 영상이 인트라넷을 통해 병리과 교수 연구실 모니터에 바로 나타나고, 병리과 전문의가 영상을 보면서 수술실에 즉시 판독 결과를 전달한다.
검사 대기시간이 줄면 하루 한 건밖에 하지 못하던 수술실에서 더 많은 환자를 수술할 수 있다. 병원 수익성뿐 아니라 의료진의 근무 여건과 수술실 운영 효율도 함께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뇌종양은 시작일 뿐… 대장암·두경부암, 로봇수술까지"
초소형 공초점 레이저 내시경(CLE) 플랫폼 'cCeLL'. (사진=브이픽스메디칼) Q. 이 기술을 뇌종양 이외의 암종에도 적용할 수 있나.
강: 원리 자체는 암종을 가리지 않고 전 암종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병리과에서 조직을 염색해 읽느냐, 레이저로 스캔해 읽느냐의 차이일 뿐 판독하는 조직은 같다.
뇌는 정상 조직과 종양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가장 먼저 기준을 세우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안암병원에서도 대장암, 두경부암, 위·식도암, 비뇨기 질환 등으로 확장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장암은 이미 이미지 데이터를 확인했고, 병리과에서도 익숙하게 판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답지가 없는 상태에서 정상 조직과 종양 조직의 참조 표준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퍼스트 무버다. 서울대 해부학교실과 함께 표준화 작업과 참조 책자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나아가 다빈치 로봇수술기의 로봇 팔에 장착할 수 있는 초소형 탐침도 개발했다.
"AI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 잘 활용할 지혜 모아야"
Q. 임상 적용과 보급 과정에서 나타날 사회적 합의나 책임 소재 문제는 어떻게 보나.
강: AI 진단의 최종 책임 소재를 정하는 문제와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는 결국 우리 사회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그 시스템을 존중하며 따라가야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좋은 장비가 나오면 이를 어떻게 잘 활용할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율주행차가 나왔다고 "택시 기사가 다 망한다"며 거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스마트폰이 나온 뒤 결국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
의료 AI라는 큰 흐름은 결국 오게 돼 있다. 무작정 거부하기보다 이 기술을 잘 활용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FDA 승인 발판으로 전 암종 확장… 글로벌 표준 선도할 것"
강신혁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 브이픽스메디칼 관계자들이 지난해 5월 22일 디지털 생검 플랫폼 'cCeLL' 기술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 교수팀은 브이픽스메디칼과 공동 임상연구, AI 기반 진단모델 개발 및 의료진 교육 등을 추진하며 cCeLL의 임상 적용과 암종 확대에 나서고 있다. (사진=브이픽스메디칼)Q. 향후 글로벌 진출 계획과 비전은 무엇인가.
강: cCeLL 장비는 이미 2024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남이 만든 것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순수 국내 원천 기술이다.
그동안 국가 과제를 착실히 수행해 데이터를 쌓고, 국제 다기관 임상과 FDA 승인까지 거친 뒤 미국 신경외과 연구진과의 공동연구로 이어가고 있다. 이런 모델이 우리나라가 과학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길이라고 본다.
뇌종양에서 출발한 이 기술은 이제 대장암과 두경부암 등 전 암종으로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이 만든 AI 기반 실시간 수술 진단 플랫폼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아 전 세계 암 환자에게 더 안전하고 정확한 수술을 제공할 수 있도록 기술 확장과 고도화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