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병원 신경과 오지영 교수[헬스코리아뉴스 / 오지영] 살아가면서 감기나 장염을 앓아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대부분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자연스럽게 회복되지만, 일부에서는 예상치 못한 신경계 이상 증상이 뒤따르기도 한다. 단순한 피로로 여겼던 손발 저림이 점차 심해지고, 계단을 오르기 어렵거나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난다면 희귀 신경질환인 '길랭-바레증후군(Guillain-Barré syndrome)'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길랭-바레증후군은 1916년 프랑스의 신경학자 조르주 길랭(Georges Guillain)과 장 알렉상드르 바레(Jean Alexandre Barré)가 처음 보고한 질환으로, 두 사람의 이름에서 질환명이 유래됐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말초신경을 잘못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자가면역성 신경질환으로, 희귀난치질환에 속한다.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감염 후 면역 이상 반응이 신경 공격
길랭-바레증후군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면역 반응의 이상이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특히 감기, 독감, 장염 등 바이러스 또는 세균 감염 이후 수일에서 수주 사이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감염원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정상 신경세포까지 공격하게 되면서 염증과 신경 손상이 발생한다. 일부에서는 예방접종이나 수술 이후 발병 사례도 보고되고 있지만 매우 드문 편이다.
대부분 환자는 발병 전 감기나 설사 같은 감염 증상을 경험한 경우가 많다. 감염 이후 모든 사람이 발병하는 것은 아니며,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면역 이상 반응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손발 저림에서 시작돼 마비로 진행될 수도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통증과 근력 저하다. 처음에는 목이나 허리 통증 때문에 디스크 질환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고 보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증상은 대개 양측에 대칭적으로 나타나며 아래에서 위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인다. 증상이 심해질 경우 팔과 얼굴 근육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삼킴 장애나 호흡근 마비가 동반되기도 한다. 일부 환자에서는 심한 통증과 함께 혈압 변화, 부정맥 등 자율신경계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길랭-바레증후군은 진행 속도가 빠른 경우 수일 내 보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호흡곤란이나 급격한 근력 저하가 동반된다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신경검사와 뇌척수액 검사가 진단의 핵심
길랭-바레증후군은 진행 속도가 빠른 만큼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신속한 진단이 중요하다.
신경과 전문의의 신경학적 진찰을 바탕으로 말초신경 기능 저하 여부를 확인하는 근전도 및 신경전도 검사를 시행한다. 뇌척수액 검사에서 단백질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MRI 등 영상검사를 시행해 다른 신경질환이나 근력 저하를 유발하는 질환과 감별 진단을 진행한다. 특정 검사 한 가지로 진단하기보다는 증상의 진행 양상과 신경학적 진찰,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한 질환이다.
◇면역치료와 재활치료 병행…회복 가능성 높아
길랭-바레증후군 치료의 핵심은 비정상적인 면역 반응을 억제해 신경 손상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증상이 경미한 경우 자연 회복되기도 하지만, 보행이 어려울 정도로 근력 약화가 심한 경우에는 고용량 면역글로불린 정맥주사 치료나 혈장교환술을 시행한다. 혈장교환술은 혈액 속에서 신경을 공격하는 항체를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이러한 면역치료는 증상 발현 초기에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환자의 상태에 따라 호흡 보조 치료와 통증 조절 등 보존적 치료를 병행하게 된다.
재활치료 역시 중요하다. 근력 회복과 보행 기능 개선을 위해 물리치료와 재활 운동을 꾸준히 시행해야 한다. 회복 속도에는 개인차가 있지만 상당수 환자들은 수개월에 걸쳐 기능을 회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빠른 이상 신호 인지가 무엇보다 중요
길랭-바레증후군은 비교적 드문 질환이지만 조기 발견과 치료 여부에 따라 예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감염 이후 갑작스러운 손발 저림이나 근력 저하가 나타난다면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희귀질환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조기에 진단받고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면 좋은 회복 경과를 보이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다만 며칠 사이 근력 저하가 빠르게 진행되거나 호흡곤란 증상이 동반된다면 단순 피로나 후유증으로 생각하지 말고 신경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글 / 건국대병원 신경과 오지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