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호 편집국장[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자회사를 다시 본사로 흡수하며 조직의 군살을 빼고 있다. 휴온스, 일동제약, 보령 등 중대형 제약사들이 잇따라 꺼내 든 합병 카드는 과거 외부 자금 유치를 위해 계열사를 쪼개던 분사 유행과 정 반대의 모습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바이오 투자 심리 위축이라는 현실적 한계가 결국 '각자도생'이 아닌 '본사 결집'을 강제한 형국이다.
과거 제약업계는 신사업 진출 시 발생하는 위험을 분산하고 막대한 연구개발 자금을 외부에서 수혈하기 위해 물적분할이나 벤처 형태의 자회사 설립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자본 시장의 유동성이 메마르면서 분사의 실익은 사라지고, 오히려 모회사와 자회사가 중복으로 지출하는 인건비와 관리비 등 고정비 부담만 가중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표상으로는 덩치가 커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내부 거래와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체력이 깎이고 있었던 셈이다. 이번 합병 릴레이는 이러한 비효율을 제거해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문제는 합병 이후의 행보다. 합병이 그저 비용 절감이나 지배구조 단순화라는 내부 사정에만 머문다면, 이는 성장이 아닌 후퇴의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조직을 하나로 합쳤다고 해서 신약 개발의 난도가 낮아지거나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지붕 아래 모인 서로 다른 조직 문화를 조화롭게 융합하고, 집중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 등 더 고차원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 합병이 덩치 줄이기를 통한 재무제표 개선에만 치중된다면, 미래를 위한 R&D 동력은 더욱 약화될 수 있다. 기업들이 내세운 '역량 내재화'가 실질적인 신약 상업화나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번 새판 짜기는 위기 상황에서의 임시방편이자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시장은 기업이 얼마나 많은 자회사를 거느렸는지가 아니라, 그 자회사들이 어떤 시너지를 내며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는지에 주목한다.
흩어진 자원을 하나로 모아 의사결정 단계를 좁힌 만큼, 이제는 응집된 힘이 어떻게 수익성과 글로벌 경쟁력으로 치환되는지 결과물로 증명해야 한다. 팽창의 시대를 지나 내실의 시대로 진입한 지금, 우리 제약업계에 필요한 것은 조직의 물리적 재편을 넘어선 압도적인 실행력이다. 합병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합병을 통해 확보한 효율성으로 글로벌 신약 탄생이라는 본질적 목표를 향해 얼마나 더 빠르게 달려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