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6일 오전 10시면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다. 도로 위의 자동차들도 멈추고 몇 초 동안 도시는 조용해진다. 그러나 사이렌이 멈춘 뒤의 풍경은 의외로 빠르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다시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약속 장소로 향하며 평범한 하루를 이어간다. 어쩌면 현충일도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잠깐 기억하고 금세 잊어버리는 날.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참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공기처럼 존재한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은 공기의 소중함을 산소가 부족해졌을 때 깨닫는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실감한다. 하지만 이미 위기가 닥친 뒤 깨닫는 것은 너무 늦다.
특히 오늘날을 살아가는 세대에게 전쟁은 역사책 속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접하는 과거의 사건에 가깝다. 총성과 피난길,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은 실제 경험이 아니라 기록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현충일의 의미도 점점 추상적인 단어로만 남을 위험이 있다.
어쩌면 현충일은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잊는 존재인지를 돌아보는 날일 수 있다. 사람은 기억보다 망각에 더 익숙한 존재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뉴스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른 이야기로 덮인다. 누군가의 희생도 시간이 지나면 숫자가 되고 기록이 된다. 이름은 사라지고 사건만 남는다.
그래서 기억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에 가까운 행위인지도 모른다.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되새기는 것이다. 현충일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국가가 단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해 하루를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잊지 않으려는 사회적 약속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충일은 과거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날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날에 가깝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가.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사이렌 소리는 매년 몇 초밖에 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다. 현충일의 진짜 의미는 묵념하는 순간이 아니라, 묵념이 끝난 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