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이 인간인 이유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한은 사람이 인간관계를 도외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면 공동체를 평화롭게 운영하기 위한 질서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서 대표적인 것이 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 법은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근대에 오면서 정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는 인류의 역사가 바뀌기 시작한 시대이고, 시민혁명을 통해 주권이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하고도 오래 걸렸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실현된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는 어떤 변화도 대가를 필요로 한

다.

영국도 수 세기에 걸친 시민혁명의 결과로 입헌군주제를 통한 대의제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미국도 영국으로부터 독립혁명과 연방주의자와 분리주의자 간의 다툼,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지역갈등을 완화했다. 프랑스는 계몽주의를 확산하면서 시민혁명으로 새롭게 국가체제를 시작했다. 유럽은 시민혁명 이후에도 무려 2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전쟁과 갈등 및 분열 끝에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사회가 변화하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18세기에 태동한 사회주의는 19세기를 거치면서 공산주의와 결합했지만, 당시 사회에 녹아들지 못했다. 사회주의는 20세기에 오면서 레닌의 독재를 통해 구소련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결과 20세기는 이념에 기초한 냉전체제가 지속됐고, 20세기 말에 와서야 구소련부터 시작해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현대의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를 기초로 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여러 요소와 민주주의의 여러 요소를 받아들여서 변형된 형태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는 몇몇 국가는 여전히 독재를 유지하고 있다. 현실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면 독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역사는 사회주의가 결코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이란 이념이 기초하고 있는 사상이다. 그중에서도 자유가 핵심이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평등을 위해 자유를 희생한다. 자유가 있어야 평등이 실현될 수 있음에도 절대적 평등을 내세운다. 그러면서 이를 민주주의라고 강변한다. 과거 동독은 ‘독일민주공화국’이란 국호를 갖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구동독을 민주주의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뻔뻔하게도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인간사회가 모순 속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사회주의자 자신들도 사회주의가 얼마나 모순된 이념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구서독이 ‘독일연방공화국’이란 국호를 사용하면서, 헌법인 기본법에는 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사용해 자유를 강조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역사를 보면 현대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란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오게 된다. 이렇게 현란한 용어의 사용은 인간사회를 혼란하게 만든다. 용어는 빈번한 사용으로 사람의 사고에 파고들어 지배하게 됨으로써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어를 선택하고 사용할 때는 그 영향력을 고려해 조심해야 한다. 이는 법률을 제정할 때도 마찬가지로 법률의 내용이 정당해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충격적인 일들이 드러나고 있다. 독립된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음서제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나, 원전 가동중단과 사대강 수중보 해체 등에 대한 진실 의혹은 그 의혹의 주체가 국가권력 또는 정치권력이라고 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 선관위의 음서제 의혹에는 정치적 의도 등의 여러 문제를 떠나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혈연·학연·지연이라는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한 과거로부터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그리고 개인이나 집단의 사익을 위해 전체를 위한 공익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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