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인류 희대의 사기극

고석근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사건 중 하나다. 일부에서는 그 덕분에 인류가 번영과 진보의 길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파멸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는 것이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에서 

 

 

나는 직장을 다니다 대학에 들어가 동생뻘들과 학우가 되었다. 물에 떠 있는 기름처럼 겉돌게 되었다. 겨울 방학이 되자 시간이 넘쳐 났다. ‘뭐하지? 그때 뇌리에 퍼뜩 떠올랐던 생각, ‘논문을 쓰자!’

 

알 수 없는 충동이었다. 겨울 방학 내내 여기저기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논문 한 편을 완성했다. ‘남녀불평등에 대한 소고(小考)’ 논문 쓰는 법을 단 한 번도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생애 처음으로 쓴 논문이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제목의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 같다. ‘남녀가 왜 불평등하게 되었을까? 그 기원은?’ 방학이 끝나고 원고지 60여 매의 어설픈 논문 한 편이 달랑 남았다. 책상 서랍에 집어넣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오! 어느 날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서 본 ‘4.19 기념 논문 현상공모’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학보사에 투고했다. 당선이었다. 논문 전편이 학교신문에 실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 후 나는 내 인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심사위원을 맡으셨던 지도교수님이 나를 극찬했다. 교수님은 내게 등록금보다 훨씬 많은 장학금을 주시며 학문의 길을 가라고 하셨다. 

 

 “자네 학자의 자질이 있어!” 

 

나는 그 후 제도권이 아닌 내 나름의 ‘학문의 길’을 가게 되었다. 나는 그때 논문을 쓰며 남녀 불평등의 기원을 알게 되었다. ‘소유’였다. 농업혁명은 그동안 무소유로 살아가던 원시인들에게 생산물의 소유라는 개념을 알게 했다.

 

소유 개념은 좋은 땅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게 했다. 전쟁에 유리한 남자가 차츰 사회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소유를 가진 귀족이 생겨나 계급사회가 되었다.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가던 원시시대보다 훨씬 일을 많이 하는 데도 대다수 사람들은 가난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생겨난 남녀불평등, 인간불평등은 이후 종교, 철학, 법, 제도의 이름으로 공고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약 1만 년 전에 일어난 농업혁명을 ‘인류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한다. 

 

“농업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

 

한번 소유의 맛을 본 인류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넌 것이다. 탐욕은 계속 자가 증식을 하게 되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한번 욕심에 맛들이게 되면, 그 욕심에 대한 생각을 끊기가 힘들다.

 

무한히 팽창하는 자아, 이 자아를 통제하기 위해 지구 곳곳에서 성현들이 출현했다.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은 똑 같다. “본능이 아닌 본성의 소리를 듣고 살아라!”인간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다른 존재들과 공감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본성(本性)이다. 이 마음에는 동양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서양에서 말하는 진선미(眞善美)가 있다. 이 마음을 가꾸지 않으면 인간은 동물만도 못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욕망을 무한히 부추기는 사회다.

 

기후 위기가 오면서 인류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되었다. 인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인류 희대의 사기극을 접고 수만 년 동안 사랑 가득하게 살았던 ‘원시사회의 공동체 정신’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사기극을 찬란한 문명, 풍요라는 이름으로 계속할 것인가? 사기극의 역사는 불과 1만 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의 고향 3,4만년 동안의 ‘에덴동산’을 생각해야 한다. 유발 하라리는 앞으로 인류는 신(호모 데우스)이 되어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미 인류는 원시 시절에 신이었다. 그들의 마음에는 신성(神性)이 충만했다. 그들은 삼라만상을 다 신으로 보았다. 그런데 인류는 유발 하라리가 예견하듯이 과학의 힘으로 신이 되려 할 것이다. 무한히 팽창하는 자아를 가진 과학적인 인간은 어떤 신이 되어갈까? 

 

알 수 없는 충동으로 쓴 어설픈 논문 한 편, 그때 나는 신의 소리에 따라 그렇게 한 게 아니었을까? 그 소리를 크게 들으며 살아가면 우리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이 되지 않을까.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3.02.09 11:45 수정 2023.02.0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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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