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차승진
사진 차승진

아내가 김장하는 날

- 차 승 진 -

먹는 일만큼 거룩한 날 
가족들과 둘러앉아 나누는 저녁 밥상
아이들이 재잘대는 경쾌한 배경음악
일용할 음식을 숟가락으로 들어올리는
삶의 순리를 위한 경배!
햇살 좋은 날, 아내가 김장을 하는데 
여자는 참 아름다워서,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여서, 곁에서 지켜보는 긴장된 여백
우리가 항용 아내라고 부르는 집사람,
그런 사람과 세월을 건너온 사람은 알리라,
궂은날, 맑은 날, 외출한 날
날마다 벗어 놓은 옷가지가 바구니에 쌓이듯
먹는 일이란 살아있으므로 걸어가는 하루하루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여인들의 얼룩진 슬픈 손가락 마디
저 위대한 손가락들이 먹여 살린 지난한 세월
매니큐어 바른 젊은 여성의 부드러운 손을
'패티시즘'이라는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삼시세끼 밥을 먹는
일에 대하여, 갖은양념으로 배추를 버무리는
재바른 손놀림에 대하여, 내가 해야 할
작은 일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 나는
한 끼 밥을 축내는 오래된 불용품 같아서
쓱쓱 싹싹 리듬에 맞춰 뚝딱뚝딱
플라스틱 김치 통을 날렵하게 채우는
아내의 분주한 손을 바라보다가
수북이 채워진 김치 통을 날라주는
허드렛일에 만족하다가손발이
어긋나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그런저런 잡부 일도 어설픈 날
그래도 함께했다고 향긋한 모과차를
건내주는 아내의 손길에 고맙고, 감사해야 할,​
아내가 완성한 김장의 마침표를 찍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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