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식( 인덕학원 이사)
최동식( 인덕학원 이사)

모든 제도가 합리적으로 정착되고 국민의식이 성숙한 선진사회에서는 일확천금을 꿈꾸거나 벼락부자가 되려는 욕망을 갖기 어렵다. 각자 성실하게 일하여 점차 소유를 늘려가면서 생활의 안정을 꾀하고 또 그 모든 성취가 자신의 노력과 땀의 결실이라는 자부심도 아울러 갖게 되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가질 수 있는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오늘날 권력을 이용한 협잡으로 부패의혹이 짙은 대형 범죄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이제 선량한 국민들은 이러한 추한 모습을 보는 것도 지겹고 신물이 날 지경이다.

우리나라가 가난했을 적에는 주로 박봉에 시달리는 하위직 공무원들이 수뢰를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교통경찰이 슬그머니 돈을 받고 위반을 눈감아 준다거나 민원담당자가 급행료를 받고 사무 처리를 우선 해 주거나 또는 교원들이 학부모로부터 봉투를 받는 등 주로 소소한 금품을 주고받는 일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이러한 부조리한 관행들도 반드시 척결되어야 합리적이고 편안한 사회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작지 않은 걱정거리로 비추어졌었다. 다행히 전산화 시스템이 급속히 갖추어지면서 모든 행정이 투명해지고 국민생활과 의식수준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이러한 불공정한 관행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져갔다. 작금의 대규모 범죄들에 비하면 가히 조족지혈(鳥足之血)이랄 수 있고 애교로까지 여겨질 만한 빈곤했던 시절의 애환 섞인 추억이기도 하다.

요즈음의 부정부패는 성격이 전혀 달라 보인다. 부정부패는 주로 정치권력이나 거대조직을 배경으로 한 대규모의 사기행각이 주종을 이룬다. 합법을 가장하고 법률의 틈새를 이용해서 수십 수백억을 한입에 털어넣고 잠적하거나 정책적 적합성을 가장하여 국민들을 눈속임하고 법적 보호망 속에 슬그머니 그리고 공공연하게 숨어드는 일이 종종 눈에 띈다. 불행하게도 그 중심에 국회가 있음을 본다. 국회는 국민과 사회발전을 위해 법률을 고안해 내는 국민의 대표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온갖 특권을 쥐고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의 대규모 부정부패 사건들이 특권을 배경으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의 특권은 최소화되어야 마땅하거니와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은 물론 불체포특권을 위시하여 가히 치외법권이라 이를 만큼 어마어마한 특권과 특혜를 누리면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나라의 정사를 논하는 사람들이 서민들과 차별되는 특별한 대우를 받고 특별한 권한을 누리는 일은 얼마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테면 의원들이 국회에서 하는 발언을 꼬투리 잡아 함부로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국민들이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특권은 결코 면책특권이 아니라 불체포특권을 위시해서 일일이 거론하는 것조차 민망할 지경인 가당찮은 특권들이 백 개도 넘는다는 데 있다.

혹자는 백개를 넘어 이백개에 달하는 그들의 어마어마한 특권들은 염라대왕도 부러워 할 지경이라는 풍자를 카톡방에 올리기도 한다. 국민들은 20년 이상의 오랜 기간에 걸쳐 기금을 붓고서도 매월 백만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국민연금을 받고 있거늘 저들은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4년 동안 뱃지를 단 경력만 있으면 아무런 조건 없이 매월 120만원씩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오로지 자기들만의 복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아마도 그 법률의 제정에는 여야가 만장일치로 가결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기들이 받을 임금과 수당들을 자기들 멋대로 정하고 인상하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국회의원마다 아홉 명이나 되는 보좌관을 거느리면서 해마다 수십억원의 국고를 지출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보좌관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입법기관임을 빙자해서 무소불위의 입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견제를 받을 수 있어야 건전하게 기능한다는 보편적인 상식도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어떤 법률도 그것이 정당하건 불합리한 것이건 간에 자의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초월적 권력을 향유하기 때문에 아예 월권이란 단어는 존재할 여지도 없다. 국민들의 비난을 회피할 요량으로 선거 때면 잠깐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빈말을 되풀이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당선이 확정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그 특권을 누리는 맛에 절대로 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특권을 활용하고 특권적 보호막을 방패삼아 다수의 파렴치범들이 버젓이 금뱃지를 달고 국회의원 행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투옥되어 마땅한 범죄를 저지르고서도 동료들의 비호 속에 체포를 면할 수 있는 불체포특권은 도대체 항구적이고 보편성 있는 철칙이라도 되는 것인가? 시대상황이 상전벽해(桑田碧海)만큼이나 변하였거늘 무슨 배짱으로 이런 전근대적인 법 규정을 움켜쥐고 있는 것인가? 예나 이제나 국회는 여전히 국민을 시민(市民)이 아니라 백성(百姓)으로 취급해 온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가당찮은 법을 만들고 이를 마르고 닳도록 고수하려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런 모습의 국회를 국민의 진정한 대표기관으로 인정하고 존경과 기대를 가질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 땅에 더 이상 부정부패가 만연하지 않고 건전한 사회가 정착되도록 지도력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하루빨리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상당 부분의 특권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국회의원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국민소환을 제도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러한 조치가 선행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가 한 단계 더 발전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 한국의 국회의원들만큼 광범위한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나라가 있는지 묻고 싶다.

무릇 지도자는 어려운 일에 솔선하고 고통을 앞장서서 감수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믿음과 존경을 받고 또 정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으며 그 덕에 국민들도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것이다. 특권의식에 젖어 항구적으로 자기들만의 권력을 향유하고 범죄자들을 보호하면서 시대가 변해도 이것만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부정부패를 근절시키는 일은 요원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계묘년 새해에는 국회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서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소개:

교육장 역임

호서대, 순천향대 대학원 겸임교수

신성대학교 초빙교수

학교법인 인덕하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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