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버선

이태겨울 내내 신어 닳아 해진 덧버선코
발가락도 발바닥도 세상구경 한 지 오래

오가다가 생각나면 사달라는 부탁에도
겨울 한철 다가도록 새까맣게 잊어먹고

말한 이도 들은 나도 건성으로 넘기다가
거리 난전 싸구려판 지천으로 널렸기에

별무늬로 하나 골라 생색내며 던져주니
색깔 좋다 잘 골랐다 함박웃음 흘려대며

세상으뜸 남편이라 낯뜨거운 칭송에다
종일토록 콧노래가 그치지를 않는구나

‘덧버선아 덧버선아 그대 고운 덧버선아
너 어느 별에서 왔니 사랑 담뿍 품어안고....’

 

시의 창

식솔 자랑, 그 중에서도 제 아내 자랑 하는 사람을 팔푼이라 한다던가? 아무튼-

아마도 내 아내는 전생에 내게 엄청 많은 빚을 진 사람이었을 게다.

그래서 현생에서는 그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일방적으로 고생하며, 양보하며, 기다리며, 내 뒷모습만 바라보며, 그걸 행복이라 여기며, 만족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보다.

그토록 한 평생 애를 먹이고 속을 썩였으면 제대로 날잡아 드잡이질이라도 하거나 불평불만 하소연이라도 작심하고 해 볼 만도 하건만, 아내는 도대체 무슨 속내인지 수십 년을 인고로 견디면서 그야말로 큰 소리 내어 바가지 한 번 긁어본 적 없으며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오로지 여필종부를 미덕으로 여기고 있으니, 못난 나로서는 이거야 말로 전생으로부터 이어오는 인연이 아닌 다음에야 달리 설명할 방도도 없으므로, 이름하여 천복이라고 제목을 아니 붙일 수 없으리.

그런데 문제는 정도껏이 아니고 지나칠 정도의 순애보로 너무 그렇게 살다보니 나 자신이 세상 살면서 아무데서나 긴장보따리를 그만큼 풀어놓게 되고, 그리하여 실수 저지르는 것까지도 별 것 아닌 걸로 여기게 되는 나쁜 습관이 생겨났다는 데에 있다.

나라는 위인은 이상하게도 다른 머리는 좋은 편인데 셈이 좀 늦고 어리숙하여 금전거래에서 손해를 자주 보게 되고, 대인관계에서도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통에 엉겁결에 이용을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그 피해의 여파는 고스란히 아내에게 미치게 되고 해결의 책임도 아내가 떠맡게 되는 경우가 참으로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이 노릇이 정녕 큰 문제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기에 생활 습관이나 대처 방안을 좀 고쳐보려고 나름 무진 애를 쓰고는 있지만 평생을 그리 살아온 주변머리에 새삼 이 나이 먹고서는 개선의 여지가 잘 안 보이는 게 현실이고 보니, 그냥 끝까지 이제껏 해온대로 아내에게 적당히 의지하며 유효적절한 훈수를 들어주면서, 그리 살아갈 방도 밖에는 없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래서 나는 몽매한 나를 바꾸기보다는 비교적 현명한 아내가 새 해를 맞이한 이 시점에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서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다짐할 것은 다짐하며, 보다 행복하고 더 나은 우리의 남은 삶을 위하여 내 부탁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조심스런 바램이다.

우선 처음으로 바라는 것을 말하라면 지금 그대로의 모습처럼 아내가 늘 내 안에 머물러 있어주었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간직하고 있는 아내에 대한 느낌이 영원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가끔씩이라도 내게 해주었던 핀잔과 잔소리를 앞으로도 변치 않고 줄창 해주었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내 곁에 살아있음을 늘상 느끼면서 살았으면 하는 거다.

또한 지금껏 나를 믿어주었듯이 앞으로도 내내 나의 힘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변함없이 아내의 영원한 친구로 살았으면 하는 거다.

그리고 내가 혹 아내를 실망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중도에 나의 의지를 아주 꺾진 않았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내를 영원토록 다정다감한 연인으로 생각하며 살았으면 하는 거다.

그러고도 바라는 것이 있으니, 내가 아내에게 해 준 것이 비록 많지 않더라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생각하며 꿈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아내의 그 생각이 결국에는 들어맞는 결과를 맛보았으면 하는 거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 나의 바램을 아내가 쉽게 지나쳐 버리진 않았으면 하는 거다.

그래서 내가 아내를 지금보다도 좀 더 많이 그리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그렇게 됨으로 나는 어제까지의 나보다는 오늘부터의 내가 더 적극적인 사람으로 내 삶을 살고 싶고, 내일의 나를 보며 항상 기쁜 마음을 간직할 수 있게 되고 싶은 거다.

기쁨이 삶에 있어서 제일의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 삶의 욕구이며, 삶의 힘이며, 또 다시 삶의 근원이며, 또 다시 삶의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쁜 마음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슬픔도 분노도 그 어떠한 고뇌도 기쁨의 용광로에선 모두 용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쁨을 넓이로 말하자면 온 누리에 차고 넘치는 것이며, 크기로 말하자면 태산보다도 더 크고 높을 수 있을 것이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다."
기쁨은 언제나 혼자 있기를 거부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즐겨한다.
기쁨이 함께이기를 원하는 것은 그 아름다운 기쁨을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반대로 슬픔이 혼자이기를 원하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그 슬픔을 나누어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세찬 폭풍과 성난 빗줄기가 분노와 슬픔의 다른 모습이라면 맑게 개인 날씨와 밝고 청명한 하늘, 그리고 산들바람은 기쁨과 즐거움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기쁜 마음 속에선 결코 슬픔이 자라지 못한다.

질병과 감정의 연관관계는 이미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되어 있다.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항체가 많이 생성된다고 한다.
반면 마음이 우울한 사람들은 면역체계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고 한다.
어찌 고단하며 길고 긴 우리의 삶에 항상 기쁘고 좋은 일만 있겠는가?
누구나 평탄한 삶을 원하지만 맞닥뜨리는 삶은 늘 변화무쌍, 또 예측불허이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대응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극복하는 힘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고난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참으로 자존심 상하며 슬프고도 불행한 일이고, 바로 그 고난을 딛고 일어설 때 그 굴곡만큼의 너비와 깊이가 내 영혼의 곳간의 크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생각한다.
가능한 한 더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창고를 마련하는 것.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짚어야 할 진리이다.
그러므로 밝은 웃음과 긍정적인 사고는 기쁨 제조기인 동시에 어려움에 당면했을 때 그것에 맞설 힘을 비축하게 하는 훌륭한 삶의 방패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러나 번지르르한 이론만으로 펼쳐지는 삶을 살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현실적으로 내가 혼자 서서 세상을 얼마나 훌륭하게 살아내게 될 지도 잘 모르겠기에 앞으로도 나는, 지금까지처럼 아내의 생각을 통해서 진실을 보고 아내의 언행으로 비추어 세상을 판단하면서 시시때때로 많은 문제를 아내와 상의하며 함께 삶의 여정을 걸어가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울적한 표정이든 밝은 웃음이든, 아내의 것이라면 그게 아내의 모습이기에 환한 미소로 반기며 받아안고 싶다.

결론을 얻기 쉽지 않은 미로의 환상 속에서 헤매다가 뜬 눈으로 지새우는 밤의 끝에서도 현실로 회귀할 제면 아내가 곁에 있음을 깨달아, 알 수 없는 미지의 힘까지 솟구쳐 언제나 초롱한 아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세월이 흘러 지금보다 나이를 훨씬 더 먹어 귀가 어두워져도 밤낮 없이 아내의 발자국 소리 들으면 가슴 설레며, 늘 새로운 인연인 듯 여겨 날마다 새 행복을 만들어가고 싶다.

무시로 아내에게 새 힘을 얻어 그걸 갈고 닦아서는 지친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세상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

막연히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기꺼이 기다려줄 수 있는 순수한 모습을 항상 보여지게 하며, 그렇게 아내의 목전에서 영원히 서성이는 걸 참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싶다.

고달픈 모든 삶들이 행복으로 잉태되기를, 작은 것에도 행복 가득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다, 내 아내는.

저작권자 © 서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