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을 기리며 4부, 평생 무소유의 삶 실천

양봉규 기자 / 기사승인 : 2021-03-09 21:06:20
  • -
  • +
  • 인쇄
길상사
길상사

[뉴스써치] 한 시간 가량 눈 호강을 하고 돌아 나오는데 조금 전까지는 없던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다. 궁금해 물어보니 책 선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이란다.


생전 스님이 내놨다 하면 베스트셀러가 된 글과 산문집(散文集)이 줄을 이었는데도 스님은 정작 본인이 죽으면 어떤 경우라도 자기 이름으로 절대 책을 찍어 팔지말라는 유언(遺言)을 남기셨다.


이 유언이 지금까지 지켜져 왔지만 비록 절판(絶販)으로 구할 수 없는 아쉬움이 클망정 이 또한 스님의 높은 뜻이니 어찌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허명(虛名)과 매명(賣名)에 눈이 어두워 베스트셀러 순위까지도 조작하는 슬픈 현실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법정스님은 분명 큰 그릇 임이 자명(紫明)하다 할 것이다.


줄을 서다보니 1시간 여가 훌쩍 지났는데도 누구하나 불평하는 기색이 없다. 이 모습을 보면서 스님의 주옥(珠玉) 같은 글귀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는 사람들의 바램이 추위도 녹여주는 것 같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일까?. 같은 마음을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아 오래 서서 있어도 다리 아픔따위는 어느새 잊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받은 책 〈스스로 행복하라〉는 법정스님 열반10주기 특별판으로서 샘터 50주년 기념을 겸해 발행한 귀한 책이다.


그 의미 또한 커서 궁금한 김에 차속에서 잠시 훑어봤더니 그동안 스님이 쓰셨던 빛과 소금같은 글 중에서 뽑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길상사 송월각
길상사 송월각

▶오두막 편지, ▶미리쓰는 유서, ▶산에는 꽃이피네,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달같은해, 해같은 달, ▶무소유, ▶물이흐르고 꽃이피더라 등 눈에 많이 익은 다시 읽고싶은 소제목들로 가득채워져 있어 반가움이 더했다.


스님은 산문을 쓴후 일기장(日記帳 )처럼 꼭 그 날짜를 적어놓은 것은 스님만의 특별한 족적(足跡)이라 할만하다.


법정 스님은 생전 샘터를 유난히 아끼셨기에 그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져 열반10주기 기념 특별판까지 찍어 스님을 기리고 있다.


또 생전에는 불교경전(佛敎經典) 간행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불교신문(佛敎新聞)이나 씨알의 소리에 기고및 샘터를 통한 스님의 잔잔한 필치(筆致)와 글솜씨는 보석(寶石)과도 같아서 스님이 남기는 글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모두의 심금(心琴)을 울려놨기에 지금도 스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의 길상사를 시주(施主)한 공덕주(功德主) 김영한보살님은 처음 기생의 몸이 였으되 그가 품은 뜻은 가상하고 고귀할 뿐만아니라 평생 내몸같이 아꼈던 전재산을 꼭 맡길만한 분에게 기꺼히 무상보시(無相布施)한 통큰 여유는 감히 누구도 흉낼수 없는 고결한 불심에서 우러난 참 모습이라 할것이다.


여기에 더해 보시받은 터에 길상사를 세우고 본인 스스로 무소유를 실천하는 청정한 삶과 비움의 여유를 마지막까지 실천한 법정스님 또한 큰스님으로서 우리 가운데 길이 기억될 것이다.


길상사 참배객
길상사 참배객

김영한은 어느날 대원각에서 백석(白石1912~1996) 시인과 첫만남으로 깊은 사랑을 나눴으나 함흥갑부(咸興甲富)인 백석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애절(哀絶)함이 있다.


백석 또한 사랑한 여인 김영한을 잊지못해 '나와 나타샤의 흰당나귀'란 연서(戀書)를 남겼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이 시와 함께 그녀에게 자야(子夜)란 아호(雅號)도 지어 주었음을 볼때 두 사람의 순애보(殉愛譜)는 보다 깊었음을 엿볼 수 있다.


자야도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생전에 시집(詩集)과 책을 냈을 정도로 지적인 소양(素養)을 갖추었기에 신여성 반열(班列)에 설만하고 끝내 백석을 그리워하다 눈을 감은 애절함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


법정스님께서 1969~1974년까지 소담하게 쓴 고운글 가운데 무소유가 소제목으로 들어있고 이걸 소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을 때만해도 이런 큰 반향을 몰고 올지 누군들 알았겠는가.


비구 법정스님 사진전 포스터
비구 법정스님 사진전 포스터

책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눈이 맑아짐을 느끼는 것은 스님의 간결(簡潔)한 필치(筆致)와 깊은 서정성(抒情性)과 자연을 무던히도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는 순수함에 끌려 모두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거라는데 왜 사람들은 탐욕(貪慾)에 얼굴을 내미는가.


무소유란 빈손이란 말이 아니고 분수에 맞게 살라는 뜻일 것이며 넘치지 않게 그리고 부족하지만 채우지 말고 조금은 비워두는 여유(餘裕)이며 또한 사랑과 자비심을 키우란 말 일 것이니 무거운 짐 혼자 지지말고 다 내려놓으란 말과 상통(相通)한다 할것이다.


무소유(無所有)란 소박하게 주어진대로 살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으며 마음까지도 비우고 사는 것이며 비록 가난해도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가진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내어주는 것이기에 모든 것 기꺼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되뇌어 본다.


(사)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사)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경내를 쉬엄 쉬엄 한바퀴 돌며 극락전을 비롯한 길상사의 멋스런 운치(韻致)를 사진에 여러 장 담고 나왔다.


절 입구에서 뜻밖에도 보살님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설기 한 봉지씩을 덥석 안겨주니 이 순간까지도 따스한 스님의 손길이 전해지는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다.


귀한 책에 더해 떡까지 한아름 안고 나서려니 온몸에 뭔가 모를 기쁨이 꽉 차올랐다.


법정스님 열반 10주기 추모법회를 마치고 길상사를 나서며 생각해본다. 생전 법정스님과 길상화 보살의 인연이 우연이 아니듯 청정도량 길상사를 찾는 모든 이들이 무소유(無所有)의 참뜻을 헤아려 보는 진솔한 시간이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먼지처럼 쌓아둔 온갖 번뇌(煩惱)는 바람속에 훌훌 날려 버리고 맑고 향기로운 오늘처럼 길상사(吉祥寺) 나들이는 뜻깊은 외출이었다.


[저작권자ⓒ 뉴스써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양봉규 기자
양봉규 기자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