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흑인 사망 항의 시위. (출처: said sarkic 트위터 영상 캡처)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흑인 사망 항의 시위가 발생한 가운데 대규모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출처: said sarkic 트위터 영상 캡처)

[천지일보=이솜 기자]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에 흑인 남성이 사망하면서 촉발된 유혈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확산돼 엿새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시와 주(州) 정부 관리자들은 시위대의 움직임을 늦추기 위해 수천명의 방위군을 배치하고 140개 도시에서 엄격한 통행금지를 제정하고, 대중교통을 폐쇄했지만 많은 도시가 대혼란에 휩싸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애틀랜타, 시카고, 덴버,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는 통행금지가 발령됐다. 15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약 5천명의 병력이 배치됐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이번 주말 도심 폭력 사태로 2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며칠간 디트로이트와 미니애폴리스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경찰에게 돌과 화염병을 던졌고 캘리포니아의 20개 이상 도시에서는 도둑들이 운동화, 옷장, 휴대폰, TV, 기타 전자제품 등을 훔쳐 달아났다고 당국은 밝혔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한 유조선 트럭 운전사가 고속도로를 점거한 수천명의 시위 군중들을 들이 받기도 했다. 이에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운전자는 체포됐다.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이 사건에 대해 운전자의 동기가 불분명하다며 “사상자가 없는 게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는데 경찰이 백악관과 마주한 라파예트 공원 건너편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 1천여명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이에 시위대는 흩어져 도로 표지판과 플라스틱 장벽을 쌓아 불을 피우기도 했다. 시위대 중 일부는 미국 성조기를 꺼내 불을 붙이기도 했다.

두 명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워싱턴 D.C. 주 방위군 전체가 시위 진압을 돕기 위해 소집됐다고 AP통신에 전했다. 비밀경호국(SS) 요원들은 지난 27일 백악관 밖에 시위대 수백명이 모여들자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을 지하 벙커로 급히 이동시켰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5월 31일 델라웨어주 월밍턴의 시위 현장을 방문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조 바이든 인스타그램)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5월 31일 델라웨어주 월밍턴의 시위 현장을 방문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조 바이든 인스타그램)

민주당의 강력한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고향인 델라웨어주 월밍턴의 시위 현장을 방문해 일부 시위대와 대화를 나눴다.

AP통신 집계에 따르면 시위가 열린 며칠간 최소 4400명이 체포됐다. 체포 이유는 물건을 훔치고, 통행금지를 어기는 등 다양했다. 수천명의 시위대는 피닉스, 앨버커키, 그리고 다른 도시에서 평화 행진에 나섰고 일부는 화재, 공공 기물 파손, 도난을 그만 하라며 이 행동이 정의와 개혁에 대한 요구를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뉴욕 시장의 딸도 시위에 가담했다가 체포됐다. CNN 등에 따르면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의 딸인 키아라 더블라지오(26)가 30일 밤 불법 집회에 참여해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경찰들이 시위대를 과잉 진압한 사건도 보고됐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경찰관 2명이 31일 대학생 2명에게 테이저건을 발사하는 등 과도한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해고됐다.

사망한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압박한 백인 경찰관이 살인 혐의로 기소된 가운데 시위대는 당시 현장에 있던 나머지 3명의 경찰관도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 4명은 모두 해고됐다.

미국 전역에 시위가 번지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BBC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코로나19로 한산해진 도로는 인산인해를 이뤘고, 시위자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행진했다고 전했다.

사태를 진정시켜야할 트럼프 대통령은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적했다. 그는 이번 시위와 관련, 무정부주의자들과 언론이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며, 증거도 없이 외국 스파이 등 정적들이 폭력을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시위대를 두고 “극좌파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플로이드의 동생 필로니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MSNBC에 밝히기도 했다. 필로니스는 “(통화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며 “그(트럼프)는 내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힘들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그는 계속 나를 밀어냈으며 마치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지 않아’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1일 뉴저지주 캠던에서 조 위소키 캠던카운티 경찰서장이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고 있다. (출처: 트위터)
지난 5월 31일 뉴저지주 캠던에서 조 위소키 캠던카운티 경찰서장이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고 있다. (출처: 트위터)

일부 경찰들은 폭력 시위를 통제하려고 하는 가운데 다른 경찰은 시위대와 슬픔을 나누고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플로이드의 고향인 휴스턴에서도 아체베도 경찰서장이 시위대와 함께 무릎을 꿇었으며, 플로이드의 시신을 고향에 묻기 위해 경찰 호송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뉴욕시에서는 31일 타임스퀘어 근처에서 시위 중 한 경찰관이 벽에 그려진 심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인근 뉴저지주에서는 조 위소키 캠던카운티 메트로 경찰서장이 시위대와 함께 연대한다는 팻말을 들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반대편 해안인 워싱턴주 스포캔카운티에서는 시위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무릎을 꿇는 모습이 목격됐다. 경찰관들이 무릎을 꿇자 시위대는 환호성을 질렀다.

시위는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덴마크 코펜하겐 등 나라의 미국 대사관 앞까지 확산됐다.

BBC는 미국이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에 따른 시위 이후 가장 광범위한 인종 격동과 시민 불안을 목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5월 31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남성이 자신의 스케이트보드에 조지 플로이드의 이름을 써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수천 명이 모여 인종차별과 불공정, 경찰의 만행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출처: 뉴시스)
5월 31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미국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남성이 자신의 스케이트보드에 조지 플로이드의 이름을 써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수천 명이 모여 인종차별과 불공정, 경찰의 만행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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