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소송비용' 日에 못받는 이유는?…"금반언 위배"
'위안부 소송비용' 日에 못받는 이유는?…"금반언 위배"
  • 뉴시스
  • 승인 2021.04.2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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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12명, 일본에 손배 소송
1심, 원고 승소 판결…일본, 항소 안 해
법원 "소송비용 추심은 권리남용 해당"
결정 해당…기존 판결 뒤집은 것 아냐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다.

옥성구 기자 =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일본으로부터 소송 비용을 받아낼 수 없다고 법원이 결정한 가운데,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법원은 이 사건 판결에 의한 강제집행은 권리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일청구권협정과 위안부 합의 등에 비춰 강제집행을 할 경우 '금반언(禁反言·이전 자기의 언행과 모순되는 행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다만 이는 강제집행 절차와 관련 판단으로 이전 판결을 뒤집은 결정은 아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지난달 29일 "국가가 원고들(위안부 피해자)로 하여금 납입을 유예하도록 한 소송비용 중 피고(일본국)로부터 추심할 수 있는 소송비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소송구조는 경제적 약자의 소송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법원이 소송에 필요한 비용의 납입을 유예 또는 면제해준다.

이 사건에서 원고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은 소송구조 결정을 통해 인지대를 국가에 따로 내지 않고 소송을 시작했다. 이후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되며 국가가 피고로부터 소송비용을 받는 추심 절차가 진행됐다.

애초 본안 판결을 내렸던 기존 재판부는 선고 당시 "소송 비용을 피고가 부담한다"고 했지만 새롭게 바뀐 재판부는 강제집행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봤다.

이번 재판부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위안부 합의 등과 각 당국이 한 언동(최근에도 위안부 합의 유효성을 확인한 점 등)에 금반언 원칙을 더해보면 추심 결정은 국제법 위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비엔나 협약 제27조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 방법으로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비엔나 협약 제27조에 따라 국내적 사정·해석에도 불구하고 조약의 효력은 유지될 수 있다"며 "이 같은 경우 강제집행은 금반언 원칙 등을 위반함으로써 판결의 집행 자체가 권리남용에 해당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에 국가적 위신과 관련되고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하는 등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며 "헌법상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와도 상충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기존 재판부가 일본이 주장한 '주권 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국가면제 원칙을 "반인도적 범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배척하고 일본 패소 판단한 판결을 뒤집은 결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기존에 판단이 '판결'인 것과 달리 이번은 강제집행 단계에서의 '결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상충되는 판단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재판부도 이 사건 결정을 내리며 국가면제 원칙을 소송으로부터의 면제와 강제집행으로부터의 면제로 구분하고 이 사건 추심 결정은 강제집행 또는 이에 준하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은 그 국가의 주권과 권위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분쟁 절차 대상과의 관련성이 인정된다는 요건을 충족한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판단은 소송비용에 관한 추심 단계에서 강제집행 요건이 충족되지 않고 금반언 원칙에 따라 추심 결정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본 것이지 국가면제 원칙을 배척한 기존 판결을 뒤집은 것이 아니다.

이는 본안 판결이 확정되면서 이뤄질 배상 절차와도 별개의 영역이다. 법원에서의 결정은 기속력이 없고 오히려 판결이 기판력이 있기 때문에 배상은 확정된 판결문을 토대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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