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원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한때 ‘부노제조기’로 불리며 어렵다는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연이어 이끌어 냈던 기억이 있는데, 요새는 마음처럼 쉽지 않다.

얼마 전 상담을 한 일본계 회사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후 지속적으로 조합원들만 승진에서 탈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능력 없는 직원들만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도 아닌데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되는 직원들은 한결같이 조합원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상위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뚜렷했는데 지난번 승진에서는 과장급 이상이 모두 탈락하더니 이번에는 대리급 이상에서 승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사용자는 노동조합에 그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고, 노동조합은 승진에서 조합원들을 차별적으로 누락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조합에게 입증할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사건을 진행하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최근 대법원이 조합원과 비조합원 양 집단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경우 그러한 이유에 대해 사용자에게 반증하도록 하는 소위 ‘대량관찰방식’을 통해 노동조합의 입증책임을 일부 완화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 섞인 기대는 곧 무너지고 말았다. 노동조합에서 집단 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격차만 입증한다면 나머지는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증거를 들어 공정한 평가 결과에 따른 것이라 반증에 나설 것이라 생각했고, 거기까지 간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한 싸움이 될 것으로 봤다.

대형로펌의 코치를 받은 사용자는 능력주의 승진제도에 따른 결과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떠한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 한발 더 나아가 비조합원에 비해 조합원의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오히려 노동조합에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답답한 노릇이다. 평가 자료는 모두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데 노동조합 보고 입증할 것을 요구하니 말이다.

대법원 판례가 지금까지 그랬다. 부당노동행위 입증책임을 노동조합에 부담케 하고 있다는 점을 악용한 나머지, 설사 사용자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승진차별에 대해 단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노동조합에 불이익이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용자가 이를 노골적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단 부당노동행위뿐만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나 수습만료 등 평가가 들어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평가 결과가 부당하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은 노동자에게 돌아갔다. 평가를 한 자가 아닌 평가를 당한 자가 어떻게 평가의 부당함을 입증하란 말인가. 마치 도둑으로 누명을 쓴 자에게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부분은 이를 통해 사용자는 해고제한 법리를 우회적으로 회피하는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부당노동행위 여부를 살펴보기로 했다. 일부 하급심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사용자 일방만이 평가자료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정보의 비대칭을 이유로 자료를 제출할 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한다고 설시했다. 아직 더디지만 자료를 가진 자에게 그 입증책임을 돌리려는 노력이 보인다. 이는 너무나 상식적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위 노동조합이 제기한 사건은 서울지노위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로 갔으니 그 결과를 지켜볼 참이다. 반보 더 나아간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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