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하나교회 담임목사/ 미래교회럼 대표)

온 국민이 코로나 19로 인하여 걱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나 타인이나 누구라도 코로나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도록 모두 조심하고 있습니다. 웬만하면 마스크를 하고 있고, 손도 자주 씻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모임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각 지방단체에서도 여러 모양으로 애를 쓰고 있어서 감사하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의료인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남을 치료하다가 자신이 전염되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언론에서는 코로나 19 관련 기사를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더 확산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이 지금까지 모두 11명(26일 현재)이라 합니다. 죽음은 언제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질병도 질병이지만 알고 보면 여러 가지 사고로 인하여,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 더 많이 사라져갑니다. 예를 들면 자살, 교통사고, 낙태 등입니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30명 이상이 자살로 죽습니다. 하루에 10명 이상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또 낙태 수술로 죽는 생명은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코로나 19를 잡기 위해서 온 나라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만큼 자살 예방과 교통사고 줄이기, 낙태에 대해서 주의를 시키고 홍보를 한다면 훨씬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에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태아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낙태를 반대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천하보다 귀한 남의 생명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대부분 살인의 원인은 미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요한일서 3:1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마태복음 5:22)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과 같이 무서운 죄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무서운 죄를 너무나도 쉽게 저지릅니다.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조심하듯이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정말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촛불혁명 때부터 광화문 등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정의’를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움과 분노’가 가득한 광장 같아 보입니다. 국회의사당은 국정을 논의하는 장소입니다.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곳도 국민의 이름으로 서로 싸움하는 전쟁터로 보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때로는 종교단체와 교회의 지도자들마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라디아서5:15)는 말씀이 자꾸 떠올라, 두렵고 슬픕니다.

이해인의 “빗속에 드리는 기도”가 생각납니다. ‘장마철이 아니어도 우리들은 비를 맞고 있어요, 하나님. 우산을 받쳐 줄 누구 하나 없어요…. 제발 강아지 풀만한 희망 한 포기라도 좀 보여주세요, 하나님. 비옥하지도 않은 우리 땅엔 왜 이리 슬픔이 무성한가요.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고 있어요. 갈수록 사람들이 추해지는 세상은 갈수록 살기가 힘이 들어요…. 예측할 수 없는 홍수를 두려워하며 온 몸 가득히 비 맞고 섰는 당신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편할 날 없는 우기에 찢어진 비닐우산 한 개라도 좀 받쳐주세요, 하나님.’ 삼일운동 101주년이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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