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부활시대(60)] 지방분권 개헌안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집중을 견제하기 위한 대안으로 개헌을 약속했고, 2018년 청와대는 대통령 개헌안을 전문과 기본권, 지방분권, 대통령 연임제 등 3일에 걸쳐 발표했다. 당시 개헌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역사적 민주화 투쟁인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이 전문에 추가되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를 지향한다” 추가되었지만... 

국회 본회의장(자료사진)
국회 본회의장(자료사진)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고,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제, 국민법률발안제 등이 채택되었다. 개인의 기본권 분야에선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했고, 새로이 명시된 기본권으로 주거권, 건강권, 알 권리, 정보기본권, 자기 정보통제권 조항 등이 추가되었다. 가장 국민적 관심이 높은 대통령제는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대신,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방분권 분야도 변화가 적지 않았다. 현행 헌법에는 지방분권 관련 조항이 2개 조항뿐인데 대통령 개헌안에는 4개 조항으로 늘어났다. 당시 개정안 내용을 보면 지방자치 단체가 지방정부로 바뀌고, 주민자치권이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되며, 헌법 기구로서 국가자치분권회의가 구성된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를 지향한다”라는 선언이 추가되어, 지방분권이 대한민국의 토대이자 목표임을 분명히 제시했다. (현행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2항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분권 조항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표방한 문재인 후보의 대선공약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다수 언론은 지방분권 조항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일부 지방언론만이 관련 논평을 했다. <부산일보>는 사설을 통해 “아쉬움 포함한 진일보”라고 평가했는데, 지방분권개헌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잘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 손발을 묶고 있는 현행 헌법 117조와 118조

한국 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4대 지방자치권을 헌법에 명시해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실현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68.1%로 ‘반대한다’(20.9%)는 의견보다 월등히 높았다. 출처: 한국 사회여론연구소.
한국 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4대 지방자치권을 헌법에 명시해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실현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68.1%로 ‘반대한다’(20.9%)는 의견보다 월등히 높았다. 출처: 한국 사회여론연구소.

진일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지방의 손발을 묶고' 있는 현행 헌법 117조와 118조보다는 조금 낫기 때문이었다. 현행 헌법하에서는 중앙정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헌법 117조는 국가가 법률로 “지방자치 단체”를 지정할 수 있고, 자치 단체는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자치 규정을 제정할 수 있게 했다.

헌법 118조는 지방자치 단체장과 지방의회의 조직과 권한과 선거방식을 모두 법률로 정하게 했다.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 개헌안 중 현행 헌법보다 진일보한 조항들은 다음과 같았다. 

- “주민은 지방정부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규정해 자치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명시했다.
-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과 지방행정부의 장이 참여하여 지방자치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심의하는 국가자치분권회의를 헌법 기구로 만들었다.
- 지방자치 단체를 지방정부로 바꾸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를 용어상으로나마 대등한 정부 기구로 만들었다.
- 국회 법률안이 지방자치와 관련되는 경우, 지방정부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지방에 대한 불신 깊고, 지방을 중앙이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 수혜대상으로...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개헌안 역시 중앙정부의 통제와 지휘를 받는 제한적 지방자치만 허용하려 했다. 헌법 제1조에 지방분권을 지향한다고 표방하면서도, 지방정부의 입법권, 사법권, 경찰권 등은 보장하지 않았다. 지방정부의 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와 국회가 정한 법률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했다. 

- 지방정부의 조직과 운영을 중앙정부가 법률로 결정한다.
- 지방정부의 조례 제정도 법률의 위임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 지방정부에 과세권을 부여하되 중앙정부의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대통령 개헌안 지방분권 조항에는 지방의 문제를 지방 스스로 해결하게 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지방주민들의 자기 결정권을 외면하고, 지방을 중앙에 예속시켜 피폐하게 만든 역대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려는 강한 의지도 찾아볼 수도 없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방에 대한 불신이 깊고, 지방을 중앙이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 수혜대상으로 여겼음을 증명해 주었다. 

대통령 개헌안이 발표되자 야당에서는 즉각 ‘정치쇼’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고, 2020년 총선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지도 못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헌법개정을 추진할 수 있을 정도의 압승을 거두었지만 지방분권 개헌안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이미 멀어져 있었고, 어느 중앙 언론도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라고 적극 독려하지 않았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지방부활시대> 중에서 필자 동의를 얻어 발췌한 일부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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