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낙인” vs “소송 자격 없어”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 씨가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있다. 2021.07.09. [뉴시스]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 씨가 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있다. 2021.07.09. [뉴시스]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영현이 13일 서울시청에서 영결식을 마친 후 서울추모공원으로 봉송되고 있다. 2020.07.13. [뉴시스]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영현이 13일 서울시청에서 영결식을 마친 후 서울추모공원으로 봉송되고 있다. 2020.07.13. [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비서에게 했던 언행 등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박 전 시장의 유족 측이 제기한 소송이 본격 시작됐다. 유족 측은 “사법기관이 아닌 인권위 결정으로 박 전 시장이 성범죄자로 낙인찍혔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인권위에 판단 검토를 요구했으나 인권위 측은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등 기관들에 반복된 성희롱과 2차 피해에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에 관해 직권 조사한 끝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을 뿐 박 전 시장이 권고 대상자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며 유족 측 제기가 부적절하다고 맞대응했다. 재판부는 국가 기관에 권고하는 내용의 결정으로 박 전 시장이나 유족이 인격권 침해를 당했는지 처분을 취소할 수 있는 자격을 (유족에게) 줄 정도로 법이 보호하는 법익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 박원순 부인 강 씨 ‘권고 결정 취소’ 청구 소송
- “인권위 발표는 월권… 진술 기회조차 없었다”

지난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 이종환)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인인 강난희 씨가 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낸 권고 결정 취소소송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박 전 시장 유족 측 “성범죄자 발표 ‘월권’”

강 씨 측 법률대리인 정철승 변호사는 인권위 상대 권고 결정 취소 소송의 첫 변론에서 “사법 기관도 아닌 인권위가 (박 전 시장을) 성범죄자로 결정해 발표한 건 월건”이라며 “유리한 진술을 할 기회조차 없는 망인을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낙인찍었다. 인권위가 제대로 판단했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피조사자의 무덤을 누군가 파헤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는데 (무덤을 판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성범죄를 저지르고 편안히 누워 있는 박 전 시장이 너무 미워서 그랬다’고 말했다”며 “인권위 결정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1일 오후 11시52분께 경남 창녕의 박 전 시장 묘소를 파헤친 혐의(분묘발굴)로 A(29)씨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씨는 스스로 경찰에 전화를 걸어 묘소 훼손 사실을 밝히고 체포된 뒤 “성추행범으로 나쁜 사람인데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게 싫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성희롱 행위라고 판단한 근거와 자료, 조사 결과 등을 전부 공개해 인권위가 제대로 판단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권위 판단의 타당성 여부를 살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인권위는 형사사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인권위법에 규정된 성희롱 여부에 대해서만 조사할 권한을 가질 뿐 범죄 행위인 성폭력 여부에 대한 조사권한은 없다”며 “게다가 사망한 사람에 대해선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행정처분절차의 일반 원칙까지 무시하면서 고인이 된 박원순 시장에 대한 직권조사를 강행해 일방적으로 박 시장에게 오명을 씌워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 사람을 범죄자라고 확정하기 위해선 경찰수사, 검찰수사, 형사재판 제1심, 형사재판 항소심, 형사재판 상고심의 5단계를 거쳐야만 한다”며 “그럼에도 이러한 형사사법기관도 아닌 국가인권위원회는 단 한 번의 문외한적인 조사만으로 박원순 시장에게 성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의실에서 제26차 상임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상임위원회에서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과 서울시의 묵인·방조 의혹 등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를 검토하고 의결할 예정이다. 2020.07.30. [뉴시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의실에서 제26차 상임위원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상임위원회에서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추행 의혹과 서울시의 묵인·방조 의혹 등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를 검토하고 의결할 예정이다. 2020.07.30. [뉴시스]

인권위 “대상 박원순 아냐, 결정 취소 자격 없어“

앞서 인권위는 올해 1월25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박 전 시장의 성적 언동은 인권위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된다는 직권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법상 성희롱에는 위력에 의한 성추행, 성폭력, 성적 괴롭힘 등이 모두 포함된다. 

아울러 인권위는 서울시 등에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예방 ▲성 역할 고정 관념에 따른 비서실 운영 관행 개선과 성 평등 직무 가이드라인 마련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절차 점검과 2차 피해 관련 교육 강화를 권고했다.

이에 인권위 측은 “결정 내용에 대해 오인하고 계시는 게 있어 바로 잡는다”며 “(성희롱 판단은) 박 전 시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서울시장, 여성가족부 등에 대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결정은 지자체 내에서 반복된 성희롱 행위에 대한 제도 개선에 관한 것이며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 권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인권위는 또 “직접적으로 박 전 시장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강 씨)에 대한 구체적 법익 침해가 없다”며 “인격권이 침해될 여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배우자에 대한 사실적시가 상대 배우자에게 명예훼손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정 변호사의 문서제출명령 신청에 대해선 “어떤 절차로 조사했고 어떤 근거로 인용했는지는 결정문에 이례적으로 상세히 나와 있다”며 “결정문으로 충분히 판단 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재판부는 “법적으로 제3자인 원고의 인격권이 인권위의 처분에 대해 다툴 요건인 ‘법률상 이익’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라면서 “그 부분을 먼저 심리한 다음 실체적인 부분을 심리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강 씨가 이번 행정소송의 원고로 적격한지 먼저 심리한 뒤 인권위 결정 취소를 구하는 본안 소송에 돌입하겠다며 재판을 마쳤다. 다음 공판은 다음 달 30일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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