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
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

 2023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천마도(天馬圖)’를 보았다. 그리고 글로 남겨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다음의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 여기저기 찢어지고 금이 간 것은 일천오백 년 동안 묵혀 두었던, 그리하여 미치도록 몸부림친 천마의 고독이다. 그 흔적이 분명하다. 아, 얼마나 차안(此岸)의 모든 존재들과 수다를 떨고 싶었을까. 아, 얼마나 이런저런 향기를 맡고 싶었을까. 그래도 하늘과 땅에게는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싶었을 고독이여. 혹은 외로움이여. 그래, 이제는 그런 것들을 위로하여 ‘천마의 그리움’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그림의 제명(題名)도 ‘천마의 그리움’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천마도. 사진=경주국립박물관 홈페이지 캡쳐
천마도. 사진=경주국립박물관 홈페이지 캡쳐

 그리움의 길이만큼 천마의 갈기는 여전히 휘날리고 있지 않은가. 갈기에서 빠져나오는 왕의 명령인가, 서라벌에 불었던 바람의 환생인가, 그렇게 농축된 냄새가 갈기를 흩날리게 하고 있구나. 그래서 하늘로 가는 길이 가까워 보이는지도 모른다. 서라벌의 햇볕과 별빛의 잔영(殘影)이 싱싱하게 천마의 뒤를 따르고 

 천마가 하늘을 날고 싶었던 열정으로 뛰어다닌 발자국들은 격정의 음악으로 흐른다. 그 발자국들이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듯 힘차게 힘차게 비상한다. 희망의 노래, 견고한 노래가 된다. 그 노래에 맞춰 서라벌 어딘가에서 자랐을 자작나무 그 숨결을 빨아들인 말다래. 그 품속으로 스며드는 노래, 노래. 노래. 그 노래가 이제는 내게로 흘러들어와, 넘치고 넘쳐, 오, 나의 숨결이 되는구나. 그렇게 나도 신라인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여. 왕으로 돌아가는 감흥이여. 

 세 단락으로 구성하여 펼친 위의 글은 ‘경주 천마총 발굴 50주년 특별전’에 등장하는 천마도에 내 상상의 날개를 입힌 것이다. 네 종류의 천마도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자작나무 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그 경이로움을 서술하였다. 

 이 그림은 신라 마립간(麻立干) 시대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마립간은 신라 시대 임금의 칭호의 하나. 『삼국사기』에는 제19대 눌지왕에서 제22대 지증왕까지를 마립간이라 하였으나, 『삼국유사』에는 제17대 내물왕에서 제22대 지증왕까지를 지칭하였다. 그러니까 천마도는 1500년 이상의 세월을 간직한 셈이다.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에게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판자다. 천마총(天馬塚)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의 유일한 회화 유물이라고 하니 더 가슴 벅차게 읽힌다.   

 천마총에서 ‘총(塚)’은 한자어다. 무덤이라는 뜻.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으로, 단순히 개인적인 묘가 아니라 널리 만인이 애도하는 묘, 즉, 지체 높은 사람의 묘를 가리킨다. 신라의 제22대 왕인 지증왕으로 추정한다. 출토된 유물의 이름을 따라 쓰고 뒤에 ‘총’을 붙인다. 또한, 우리가 ‘태종무열왕릉’이니 ‘무령왕릉’이라고 할 때 쓰는 ‘능(陵)’은 언덕과 같은 형태를 가진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으로,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  
 
 나는 그렇게 천마도를 보고 또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마치 무덤의 주인인 신라의 왕으로 돌아가는 듯한 감흥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