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이번 대선과정에서 주요 후보들이 모두 연금개혁에 합의했다. 하지만 개혁의 기본원칙이나 방향에 합의한 게 아니라 필요성에 동의한 정도다. 새 정부는 실로 중요하고도 큰 개혁과제를 떠안았다. 연금개혁은 이해관계의 대립을 조정·통합하는 정치다. 타협과 절충으로 자칫 땜질식 처방이 되고 말 우려도 없지 않다. 개혁이 아니라 가급적 욕을 듣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우려도 있다. 정치협상의 제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정책결정 당시에 참여할 수 없는 미래세대에 또 불리한 결정이 될 수도 있다.

지난 일련의 공적연금 개혁이 반쪽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은 합리적인 정책대안의 탐색이 미흡해서라기보다는 개혁전략 부재가 더 큰 원인이다. 과거 개혁들은 모두 ‘1)정책결정자의 문제회피와 문제왜곡, 2)강력한 개혁주도그룹 부재, 3)절박한 위기의식 조성과 정보공유 미실시, 4)비전 창조와 성공적 전파 실패, 5)국지적이고 임기응변적인 개혁’이라는 실패요인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에 착안할 때, 새 정부의 연금개혁은 아래 다섯 가지의 개혁 전략과 방법을 채택했으면 좋겠다.

1. 비전과 소신을 견지한 리더를 확보하라.
개혁은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리더로 삼았을 때 올바르게 시작될 수 있다. 연금개혁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무엇보다 올바른 문제파악에 기초한 비전제시 그리고 소신 있게 정책문제를 해결하려는 개혁의지를 들 수 있다. 올바른 문제파악은 최선의 대안선택보다 더 중요하다. 리더는 이해관계자의 반대에 불구하고 소신 있게 선의의 의견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연금문제를 정책의제로 다루기를 회피하거나 왜곡해서는 바른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2. 강력한 개혁주도그룹을 형성하라.
복지정책은 끊임없이 팽창을 거듭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중지시키거나 축소하려 할 때에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주는 것을 그대로 주든가 더 줄 때는 말이 없지만 줄이려고 할 때에는 저항이 심각하다. 그래서 개혁의 권한을 위임 받은 강력한 개혁주도그룹이 필요하다. 개혁주도그룹은 기획단이나 위원회 등으로 운영하되, 분야별로 전문성 있는 사람과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3. 절박한 위기의식을 조성하고 정보를 공유하라.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위협’이 된다. 연금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제도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조성되어야 개혁이 가능하다. 한편, 연금개혁을 위해서는 연금정보의 공유와 이를 통한 합의유도가 필요하다. 개혁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또한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을 선택한다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보가 공유된다면 납득도 쉽고 장래를 내다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도 있게 된다.

4. 비전을 창조하고 성공적으로 전파하라.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당장의 문제해결에 치중해서는 개혁을 성공시킬 수 없다. 안정된 연금제도의 미래상을 보여주어야 이해관계자들이 개혁에 순응할 수 있다. 또한 비전은 공유되고 확산되어져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설득과 치열한 공론의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한 고도의 노출 전술이 채택되고, 전략적인 차원의 수사도 적절히 구사할 필요가 있다. 토론회, 간담회, 공청회, 교육, 언론활용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5. 종합적인 개혁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점진적으로 이행하라.
어느 특정부위의 개혁만으로 구조적 복잡성을 띤 연금개혁을 달성할 수 없다. 과거의 연금개혁이 미진했던 것도 국지적이고 임기응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진정한 변화를 위한 개혁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것이어야 한다. 연금개혁은 기조가 굴절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중장기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 개혁의 기본원칙과 방향을 세워놓고 계속적으로 정진해야 한다.

연금제도의 미래 비전은 자연적으로 이룩될 수 있는 어떤 모습이 아니라 체계적인 전략을 통하여 개혁을 성공시킬 때 달성할 수 있는 미래상이다. 따라서 연금개혁을 할 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What to do)’에 앞서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How to do)’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