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나로크 오리진, 역시 단순한 MMORPG가 아니다

  • 입력 2020.07.12 13:22
  • 기자명 진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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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베타 서비스를 거쳐 일본, 태국, 미국, 독일 등 역대 최고의 동시 접속 수를 기록했던 라그나로크 시리즈의 최신작이 지난 7, 정식 오픈했다. 서버 불안정과 로그인 오류까지 겹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잠시 입방아에 오르내렸지만, 전통성을 이어받았다는 평가와 함께 기대했던 대로 150만 명의 접속 수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으로 큰 인기를 구가했던 만화가 이명진 씨의 <라그나로크>를 기반으로 탄생한 이 게임은 국내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 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다. 유일무이하게 여성 고객들을 사로잡은 게임으로도 불리며 특이하게도 3D 배경에 2D 캐릭터들을 접목시키면서 비주얼 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당시 최고의 액션 RPG로 불리던 디아블로와 비슷한 전투 시스템을 선보이면서 인터페이스의 편의성도 언급됐다.

그동안 <마비노기>, <메이플 스토리> 등 국내 경쟁작과 더불어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까지 가세하면서 접속자 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 게임에 청춘을 바친 누리꾼들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전설이라고 불릴 정도였기 때문에 <라그나로크 오리진>에 거는 기대감은 컸다.

게임상에서 움직이는 캐릭터들과 더불어서 일러스트 테크닉은 캐주얼 스타일의 인체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셀식 채색이 혼재되어 있고, 2~5등신뿐만 아니라 8등신 비율의 캐릭터도 포함된다. 그러데이션 처리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밝은 채색이 눈에 띈다. 캐릭터들의 속성을 알아볼 수 있는 이른바 스탯 화면에서는 일본풍의 데포르메형 그림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대화 신에서는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는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처럼 입체적인 그래픽이 다수 섞여 있어서 시각적인 면에서는 다채로운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시스템으로 들어가 보면 전작처럼 베이스 레벨과 잡(job) 레벨로 나눈다. 능력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베이스 레벨과 달리 잡 레벨은 스킬 추가에 영향을 주는데, 어느 정도 조건이 달성되면 상위 직업으로 올라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법사 계열인 매지션은 위자드와 하이위자드로 단계적으로 상향 조절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원작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맵 디자인이 언급되고 있다. 마을과 던전 등 모바일의 특성상 축소된 경향도 있지만, 오리지널 팬들에게는 위화감 없는 게임성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MMORPG인 만큼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도 이 게임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정해진 수량만큼 의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일 출석을 잘 유도하고 있고, 그에 따른 경험치와 보상도 적절히 분배되어 있다. 적절한 시기가 오면 무기와 갑옷의 제작 및 레벨 상향 방법 등을 친절히 안내해 주기 때문에 스토리 모드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

다만 모바일 게임의 경험이 전무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심심한 면도 적지 않았다. 퀘스트 문구를 터치하면서 바로바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편했지만, 역으로 호쾌한 액션이나 극적인 전개 등은 기대할 수 없었다. 매지션 주변에서 펼쳐지는 광원 효과가 초반부터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전투 패턴이 반복적이라서 늘어지는 면이 있었고, 빈 공간을 터치하는 회피 동작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모바일 게임의 특성 때문인지 온라인 유저들이 한꺼번에 모이기라도 하면 번잡하기 이를 데 없다. 공간도 매우 협소해지면서 터치할 곳도 마땅치 않아 사실상 퀘스트 문구를 터치하는 건 필수 요소였다. 성장과 수집이 원동력이라고 하더라도 레벨을 올리는 게 너무나 손쉽기 때문에 게이머의 전술이 어느 시점에서 필요한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물론 다양한 직업과 그에 따른 성장 시스템,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아이템, 디아블로를 연상케 하는 스킬트리 등이 손을 쉽게 뗄 수 없는 강력한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상위 직업으로 올라가는데 필요한 조건이 전작에 비해 많이 개선되면서 동기 부여도 확실하다.

성장에 필요한 과정을 거치면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도 이 게임의 백미다. 앞서 잠시 설명했던 여러 종류의 일러스트 테크닉이 골고루 작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다양한 그림체가 존재하는 게임은 드물 것이다. 거기에 적절히 섞여 있는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게임에 몰입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 게임은 이명진 작가의 작품을 베이스로 제작됐지만, 북유럽 신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라그나로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앞으로 일어날 일인지, 아니면 진짜로 예고된 멸망의 소용돌이었는지 확신할 길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를 거쳐 바이킹들이 지배한 세계(오크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잉글랜드 북부)로 퍼져 나가 지금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바니르 신족과 에시르 신족을 숭배하는 부족들이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가설에서부터 우리는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종교와 신화가 통합되고 혼재되면서 갖가지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게임에서는 그리스 신화를 최대한 활용해 대서사를 흩뿌렸던 <갓 오브 워> 시리즈마저도 북유럽 신화에 손을 댈 정도였다.

그라비티 제작사의 역사를 돌이킬 기회가 없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오리진은 라그나로크의 세계관을 공유한다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거짓말쟁이 로키가 겪었던 끔찍한 복수전과 곧이어 미드가르드에 닥친 수르트의 불길 이야기는 저 멀리 역사책에 남겨둔 것처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공식 홈페이지에 설명된 세계관을 미루어 봤을 때 라그나로크가 훑고 간 자리를 대신할 이다볼(Idavoll)은 오딘의 신탁을 통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라그나로크의 세계관을 잠시 빌린 듯한 이 게임의 전개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건 방대한 텍스트였다. ‘럭스라는 어쌔신이 교국 관계자들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주인공이 파헤치는 면면이 나름대로 깊이가 있어서 수집과 성장을 목표로 하는 여타 모바일 게임과는 차별성을 두고 있었다. 악마를 상징하는 바포메트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곳곳에서 보이는 유아틱한 연출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사건의 실체를 추적할 때까지 게이머가 접하는 대사의 양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스토리의 깊이와는 무관하게 그라비티 제작사가 얼마나 시나리오에 충실히 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밖에 매 턴마다 몬스터들을 처치해야 하는 의뢰는 지나치게 단순했지만, 몬스터들을 피해 불길을 찾아가는 미니 게임이나 성직자로 변장한 주인공이 경비원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뚫고 화재 현장을 찾아가는 미션에서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연상되기도 했다. 이처럼 게이머의 전략이 필요한 퀘스트 공략도 준비되어 있는데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목표물을 터치함으로써 단순한 모바일 게임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방대한 텍스트와도 연결되는데 게임을 진행할수록 생겨나는 모험 코너도 언급하고 싶다. 그라비티 제작사는 MMORPG라는 특성을 타파하고자 게이머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코너를 마련해 놓았다. 캐릭터의 성장과 수집에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도 이 모험 코너 덕분이었다. 모름지기 모든 것에는 인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그 가운데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아마도 그라비티 제작사는 CBT(Closed Beta Test)를 통해서도 이 부분에 대해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레벨이 단순한 노동으로 이어지지 않게 한 점도 훌륭하게 작용하고 있다.

사실 라그나로크 시리즈는 2017, 제로가 오픈하면서 한 차례 고충을 겪은 바 있다. 2009, 대규모 리뉴얼 문제를 타파하고자 꺼내 들었던 야심작이었지만, 업데이트 지연과 매크로의 범람 등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부푼 기대를 안고 공식 출시됐던 오리진도 서버 불안정, 거기에 중복 터치라는 듣지도 못한 오류가 반복되면서 게이머들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그만큼 라그나로크에 거는 기대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라비티 제작사는 한꺼번에 몰린 접속자 수에 대응하기 위해 서버를 새로 증설할 정도였다. 현재는 공식 커뮤니티를 통해서 레벨 업과 장비 강화 등 활발한 토론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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