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플랫폼뉴스]당초 석유 물가는 정부가 통제해왔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정부는 ‘석유 최고 가격제’를 통해 석유를 판매할 수 있는 최고 가격을 고시해 시장에 개입해왔다.

내수 시장에서 정유사 간 경쟁 여건이 성숙되고 정유 산업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시장 자율로 가격을 결정하는 석유 가격 자유화를 도입한다.

다만 정부 가격 고시에서 민간 자율의 가격 결정 구조로 넘어 가는 과정의 완충을 위해 ‘유가연동제’를 도입했고 그 방식은 지금까지도 석유 공급, 유통 가격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유가연동제’는 국제 가격, 환율 같은 원가 변동 요인을 내수 시장에 반영해 가격 결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당초에는 국제원유가격을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1994년 이후 국제 석유 가격으로 바뀌었다.

원재료인 원유보다 완성품인 석유제품 가격 변동을 따르는 것이 석유 수급 시황을 보다 정교하고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데 현재도 정유사나 주유소 단계의 가격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수급 여건을 비롯한 다양한 국제 시황이 반영된 싱가포르 석유 현물 가격 변동요인이 우리나라 내수 시장에 약 2~3주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기본적인 흐름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개발, 원유 생산 등 상류부문에 특화된 BP, 쉘 같은 글로벌 에너지 메이저와 달리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정제, 유통 분야인 하류 부문에 사업 구조가 집중되어 있어 공급 가격이 국제 석유 가격, 환율에 연동되는 구조는 매우 공정한 잣대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가격 결정 구조는 경영 실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유사 핵심인 정유 부문 영업 이익률은 꾸준히 하락중이고 2012년 이후 수년 넘게 적자를 기록했다.

팬데믹 직전 흑자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제조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며 2018년 1.9%, 2019년에는 1.4%에 그쳤다.

100원 짜리 석유제품을 팔아 2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익을 얻은 셈이다.

팬데믹 발발 이후에는 한 해 5조원이 넘는 영업 손실도 감내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재앙으로 야기된 정유산업의 막대한 손실에도 정부는 관세, 수입부과금 납부 유예 등의 지극히 기초적인 지원책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규모의 경제를 갖췄고 고부가가치 고도화 설비 능력이 탁월한 한국 정유산업은 앤데믹이 도래하면 다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업의 힘을 정부나 정치권이 믿었던 것으로 너그럽게 해석하고 싶은데 최근 들어 시장과 가격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정부는 정유사 정제마진에 캡(cap)을 씌워 일종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안까지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정유사에 대한 횡제세 즉 초과이윤세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석유 가격 자유화 이후에도 정유사 공급 가격은 국제 가격과의 연동을 통해 시장의 감시를 받고 있다.

정유사 단계를 비롯한 석유 도소매 석유 가격은 정부에 보고되고 오피넷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비자에게 공개되며 담합을 포함한 불공정 여지는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국제 석유 가격과 환율 급등이라는 외생변수에서 비롯된 초고유가 상황의 해법으로 정유사 초과이윤세 부과 방안을 정치권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유가 자유화 취지에도 맞지 않지만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한국 정유사들의 수출 경쟁력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폭리, 담합 같은 기업의 불공정 행위는 당연히 통제되고 제재받아야 하지만 정당한 경영 활동까지 침해받는 것은 반시장적이고 월권에 해당된다.

소비자 물가를 명분으로 고유가 책임을 정유사에 떠넘기고 ‘횡재세’라는 이름으로 정유산업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며 왜곡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고 마녀사냥이며 정권과 정부의 무능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소비자를 위한다면 정부가 석유 가격을 고시하던 유가자유화 이전으로 회귀해 정제, 유통 마진을 통제하는 것도 고민해볼만 하다.

정부가 석유 가격을 고시하면 정유사들도 최소한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는 보장받을테니 지금보다 더 나빠질 일은 없다.

그런데 경쟁이 사라지면 정제 효율을 높이고 고도화설비에 투자해 수익을 극대화하며 수출을 확대해 무역 수지를 개선하려는 정유산업의 고민이나 투자도 줄어 들게 될텐데 그런 상황은 소비자도 바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부와 정치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답은 나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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