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 (경제학박사, 역사문화여행가, 전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이남철 (경제학박사, 역사문화여행가, 전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이남철 (경제학박사, 역사문화여행가, 전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인류의 모든 문명은 ‘강’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 하려면 강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강과 함께하는 도시만이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일의 나인강의 기적! 우리나라 한강의 기적이 바로 그것이다. 인류 최초의 도시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수메르인이 세운 도시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 불리던 이 지역은 농업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지역이었다. 수메르 문명이 토대가 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과 같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중위도의 온화한 기후대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물을 구하기 쉽고 비옥한 토양이 발달한 하천 주변이었다는 것이다. 인류가 여전히 채집과 수렵 생활을 하던 시기에 4대 문명의 발상지에서는 농업활동을 기반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한국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뤘다. 자본과 자원이 거의 없는 여건에서, 더구나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간의 전쟁으로 산업시설이 거의 폐허가 된 상태에서 이뤄낸 경제 성장을 세계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최근 서울시는 여의도에 국제여객터미널 ‘서울항’을 조성하는 ‘세계로 향하는 서해뱃길’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서해뱃길은 한강을 따라 서해로 이어지는 물길이다. 서울시는 이 물길을 통해 한강부터 서해를 거쳐 동북아까지 배가 오갈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논어 전편 옹야(雍也)에 `지자요수(知者樂水)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원문은 子曰(자왈), 知者樂水(지자요수), 仁者樂山(인자요산). 知者動(지자동), 仁者靜(인자정). 知者樂(지자락), 仁者壽(이자수)로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동적이고, 어진 자는 정적이다. 지혜로운 자는 낙천적이고, 어진 자는 장수를 누린다.”이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물을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초등학생인 둘째 아들을 불의의 익사 사고로 잃었다. 또한 어머니가 임신 중 꿈해몽에 태평양 검푸른 바다 한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필자를 힘들게 건져왔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부모님은 필자를 물에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물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흐르는 강물, 바닷물이든 정지된 호수의 물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신륵사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고려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하나 있다. 열반한 나옹선사의 시신을 화장한 자리에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륵사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고려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하나 있다. 열반한 나옹선사의 시신을 화장한 자리에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며칠 전  양수리를 다녀왔다. 솔직히 말하면 신륵사를 여러 차례 갔다 왔지만 사찰 구경보다 강월헌(江月軒)에서 흐르는 남한강 물을 바라보는 풍광이 좋아서이다. 한강의 2대 지류인 남한강은 강원도 오대산을 떠나 충청북도와 경기도를 거쳐 서울의 중심부로 연결된다.

신륵사 강월헌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고려 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하나 있다. 열반한 나옹선사의 시신을 화장한 자리에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신륵사는 강변 천년 사찰로 유명하다. 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신륵사는 고려 때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강원헌은 6각 정자로 그 전에 지어진 것은 1972년의 홍수로 떠내려가고, 그 뒤 삼층석탑보다 조금 아래쪽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누각의 이름인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인데,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신륵사 앞으로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를 ‘여강(驪江)’이라 부른다. 이 강은 정확히 말해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부터 이포대교 부근인 금사면 전북리까지 총 40여㎞에 이르는 1백리 물길이다. 조선시대 대학자 서거정(徐居正)은 여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멀리 동쪽에서 몇 백 리 흘러 내려온 강물이 여주에 이르러 강폭이 점점 넓어져 여강이 되었는데, 물결이 맴돌아 세차며 맑고 환하여 사랑할 만하다.”

강월헌
강월헌

서거정은 1487년(성종 18)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했을 때 그는 박사(博士)가 되어 논어(論語)를 진강하였다. 이듬해 1488년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 등이 왔을 때에도 서거정이 이들을 맞이했다. 당시 문장가로서 서거정의 명성이 중국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중국 사신들이 서거정을 대할 때마다 항상 존경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서거정은 15세기 중·후반에 6명의 국왕을 섬기면서 45년 간 관직 생활을 했다. 

필자는 신록사 강월헌을 뒤로하고 양수리로 향했다. 양수리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양수리는 본래 이수두(二水頭)라 했고, 우리말로 ‘두물머리’, ‘두물리’ 등으로 불렀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이곳에서 합류하여 한강을 이뤄 서해로 흘러든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모인다’고 해서 ‘두 물머리’, ‘이수두’, ‘양수리’라 부르게 되었다. 

양수리. 강 건너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조선시대 대 실학자 정약용이 이 나루터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의 생가는 양수리 근처인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1990년대 들어서도 가끔씩 경기도 광주군을 오가던 나룻배가 이제는 아예 끊기고 말았지만 두물머리 나루가 번성했을 때는 배가 30척 넘게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유통되는 물품은 주변 산판에서 생산되는 땔감들이었다. 양서면 목왕리나 징동리, 서종면 등에서 나오는 땔감들은 배로 서울의 광나루나 뚝섬, 마포, 용산 등지로 운반됐다.

양수리. 강 건너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조선시대 대 실학자 정약용이 이 나루터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의 생가는 양수리 근처인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양수리. 강 건너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조선시대 대 실학자 정약용이 이 나루터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의 생가는 양수리 근처인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양수리 인근 남양주시 와부읍 송촌리 운길산에는 수종사(水鍾寺)라는 절이 있다. 조선 세조임금은 1458년 신하들을 거느리고 금강산 구경을 다녀오다가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세조임금은 잠을 깨서 신하들에게 종소리가 나는 부근을 조사하게 하였다. 한참 후 신하들은 부근에 바위굴이 있음을 보고했다. 바위굴에는 18나한(羅漢)이 해맑은 웃음을 띤 채 있었다. 그리고 굴 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암벽을 울려 마치 종소리처럼 들려왔다. 세조임금은 그 소리가 참 아름답게 들렸다. 이에 세조임금은 이곳에 절을 짓고 물과 종소리를 뜻하는 ‘수종사’라 명명하였다. 

서거정은 수종사를 일러 ‘동방 사찰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라 찬양했다. 양녕대군도 수종사에 가끔 들러 그 경치를 감상했다고 한다. 서거정이 ‘수종사’를 찬양한 시다.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밤새도록 비가 와서 물이 언덕을 치네
속세의 연기와 먼지는 피할 곳이 없건만
절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여라
흰 구름은 자욱한데 누구에게 줄 수 있으랴
단풍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 하네
내 동원(東院)에 가서 참선 이야기 하려 하노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 울게 못하게 하소. 

*‘동원(東院)은 당나라의 고승 조주(趙州) 선사가 거처한 관음원의 다른 이름이다. ‘끽다거’ 화두로 유명한 조주선사는 중국 선종의 큰 산맥.

남한강, 북한강, 수종사의 물을 보면서 필자는 물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물은 파괴적인 본능을 즐긴다. 겉모습은 온화해 보여도 물은 공격을 즐긴다. 그러나 물은 모든 것을 감수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사방을 적시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리기도 한다. 물은 우리를 떠받친다. 우리를 중력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는 말이다. 커다란 배 한척이면 트럭, 기차 몇 백대의 짐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노자의 ‘도덕경 8장’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높은 선은 물과 같다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인간수양(人間修養)의 근본을 물이 가진 일곱 가지의 덕목인 수유칠덕(水有 七德)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수유칠덕은 첫째, 겸손(謙遜)이다. 물은 욕심이 없다. 물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찾아 흐른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을 때, 물은 자신을 낮추고 낮춰서 낮은 곳으로만 찾아 흐르니 이를 겸손이라 한다.

둘째, 지혜(智慧)이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흐르다가 막히면 곧장 돌아간다. 오늘날 자신을 거스른다는 이유만으로 묻지 마 폭행, 살인을 일삼고 있을 때 물은 폭력보다는 양보의 미덕으로 돌아갈 줄 아니 이를 지혜라고 한다.

셋째, 포용력(包容力)이다. 물은 무엇이든지 다 받아 준다. 깨끗한 것이거나 지저분한 것이거나 모두 다 받아준다. 오죽하면 다 받아준다는 의미로 큰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고 할까? 이것이 곧 포용력이다.

넷째, 융통성(融通性)이다. 물은 담기는 그릇을 가리지 않는다. 물은 어느 그릇에 담아도 거부하지 않고 그릇의 모양을 따라가는 성질을 갖고 있다. 네모진 그릇에 담기면 네모지게 보이고, 세모그릇에 담기면 세모지게 보이는 특성 말이다. 자신에 맞는 예쁘고 아름다운 그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그릇이나 깨진 그릇에도 서슴없이 담기니, 이를 곧 융통성이라 한다.

다섯째, 인내(忍耐)이다. 물은 끈기와 인내로 지칠 줄을 모른다. 인위적으로 물길을 막지 않으면 끊임없이 흐른다. 물길을 따라 흐르고 떨어지는 낙수는 단단한 바위도 뚫는다. 하루 아침에 뚫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끈기를 가지고 결국 단단한 바위를 뚫어내니 이를 인내라 한다.

여섯째, 용기(勇氣)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을 가졌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다보면 때로는 장엄한 폭포에서 자신을 투신해 작은 물방울로 부서지는 아픔을 참는다. 이를 용기라 한다.

일곱 번째, 대의(大義)이다. 작은 물줄기가 부서지고 깨지는 긴 여정을 견뎌 큰 강을 이루고 바다에 모이니 이를 대의라 한다.

세상 모든 일들이 양면성이 존재한다. 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조용한 침묵을 지키면서, 어느 때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도전적이고 창조를 향한 야성을 가진 물. 세상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물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일반적으로는 우유부단하고 남에게 약하게 보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물의 깊은 내면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인생도 결국 물과 같지 않은가! 인생길은 4차선의 탄탄대로가 아니다. 인생길은 고속도로처럼 쭉 뻗은 길을 갈 때도 있지만 오히려 꼬불꼬불 휘어진 좁은 길을 갈 때가 더 많다. 물은 좁고 굴곡진 길이라 해도 어디든 흘러갈 수 있다. “물 같은 사람”이란 노자가 말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와 수유칠덕(水有七德)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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