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음 두 가지 욕구
한 마음 두 가지 욕구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1.12.0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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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12월은 참 좋다. 추위는 싫어하지만 조명을 밝히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함이 있는 계절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한 해를 잘 살아내고 연말을 맞는 뿌듯함이 있어 좋다. 특별한 이슈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초에 마음먹은 매일매일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른척하지 않기로 했던 것은 잊지 않고 있으니 멋진 연말을 보낼 자격이 충분하다.

이름 짓기를 무척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다.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림책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의 주인공은 백발에 주름이 가득하다. 할머니는 자신보다 오래 사는 친구가 없어 이름을 부를 친구도 없고 자신의 이름으로 편지를 받을 수 없어 슬프다. 그래서 자신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에만 이름을 지어준다. 집, 의자, 자동차, 낡은 침대에 이름을 지어주며 행복하다고 한다. 그들보다 오래 살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갈색 개 한 마리가 할머니의 집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 개가 순하고 예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먹을 것을 주며 돌아가라고 한다. 털이 날릴 것이고, 함께 할 자리가 좁을 것이며 자동차의 연기가 개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며 매일 같이 지낼 수 없다고 한다 몇 달이 흘렀지만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는 갈색 개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갈색 개는 옷장보다, 집보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성껏 먹이를 주는 할머니는 자신이 혼자 남겨질 것을 걱정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더 이상 갈색 개는 오지 않는다. 할머니는 걱정과 쓸쓸함에 슬퍼진다. 그리고 유기견 보호소로 개를 찾아 나선다. 개의 이름을 묻는 사육사에게 “우리 개 이름은 럭키랍니다. 행운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라고 답한다. 그리고 둘은 함께 지낸다. 럭키와 함께하며 할머니는 럭키보다 오래 살 것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다.

할머니에게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할머니에게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 마음 안에는 다른 두려움도 있다. 혼자가 되는 슬픔이다. 갈색 개에게 할머니의 마음은 오롯이 투영된다. 간절히 원하는 것과 그것을 막는 두려움이 그렇다. 이름을 지어주고 사랑을 한다는 것은 혼자가 되는 상실감을 다시 경험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생명이 있는 갈색 개에게 이름을 지어 줄 수 없다.

삶은 무수히 반복되는 것 같다. 만남과 이별,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유와 무……. 잘 살아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안의 서로 다른 욕구들을 소화해 내가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리라. 어떤 이들은 무소유하면 갈등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자신의 욕구들을 무시하거나 못 본척한다. 불안과 갈등을 만날까 두려워 궁금하고 호기심 가득한 어렵지만, 행복했을 길을 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결국 마음을 주었던, 사랑을 품었던 자신의 선택을 원망하고 자책하며 후회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 용기와 행복했고 사랑했던 시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는 이제 곧 여덟 살이 된다. 처음 강아지를 만날 때 고민했다. 그 죽음을 내가 볼 수 있다는 것과 함께하기에 갖게 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함께 하며 행복할 나와 강아지에게 기회를 빼앗지 말자. 두려움 뒤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두지 말자. 우리는 함께 있어도 사랑할 것이고 함께 하지 않아도 그리워하며 사랑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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