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창용] 유럽연합(EU)이 바이오 기술을 핵심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새 법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하여 'EU 바이오 기술법(EU Biotech Act)'이다. 유럽은 이 법으로 연구실에서 나온 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과 시장으로 빠르게 이어지도록 돕겠다는 계획이다.
유럽 집행위원회(EC·European Commission)가 최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그동안 EU는 기초 연구 단계에서는 경쟁력이 있었지만, 이를 실제 산업화와 시장 진입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속도가 늦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는 현행 규제 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나라별로도 나뉘어 있어 혁신 기술을 제품으로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입법은 집행위원회가 2024년 7월 정책 의제에서 밝힌 방향성과도 연결된다. 당시 집행위원회는 '실험실에서 공장과 시장으로'라는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연구 성과가 산업과 시장으로 원활히 이전될 수 있는 제도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바이오 기술법은 이러한 선언을 정책으로 실현하기 위한 후속 조치다.
집행위원회가 구상하는 바이오 기술법의 핵심 과제도 윤곽을 드러냈다. 우선 복잡하고 분절된 규제 환경을 정비해 혁신 기술이 시장에 더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바이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자금 조달 과정에서 겪는 제약을 완화하고, 위험 감수형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 역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바이오 제조 역량도 중요한 축이다. 유럽 내 대규모 생산 인프라 확충에서 한계가 지적돼 온 만큼, EU 차원의 지원과 인센티브를 통해 안정적인 제조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숙련된 인력을 확충하고,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학문 및 교육을 통칭하는 용어) 전공 졸업생의 산업 현장 유입을 촉진하는 등 글로벌 인재 유치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데이터와 인공지능(AI) 활용을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어 바이오 기술 분야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특히 국방·안보 분야도 이번 법의 고려 대상이다. 바이오 기술은 신약·백신 같은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분야에 쓰일 수 있지만, 생물무기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집행위원회는 생물 안보, 공급망 같은 위험 요인뿐 아니라 바이오센서 기술과 국방 물류 혁신 등 까지 함께 검토해, 산업 진흥과 안보 관리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4일부터 바이오 기술법의 사전 영향 평가에 반영할 기초 자료를 모으기 위해 '공개 협의(Public Consultation)' 절차에 들어갔다. 협의는 연구자, 산업계, 투자자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공개 협의의 주제는 다양하다. ▲연구개발(R&D), 임상, 허가, 상업화 등 혁신 전 주기 단계에서의 규제 장벽 여부와 EU·비EU 규제 환경 비교 ▲학계·산업·지원 인프라 부족 등 바이오 클러스터의 장애 요인과 EU 차원의 역량 강화 필요성 등이다.
집행위원회는 이번 바이오 기술법이 연구 단계와 산업화 단계 사이에 있는 '마지막 틈'을 메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이번 공개 협의에서 수렴한 의견을 토대로 정책 효과를 자세히 검토한 뒤, 2026년 3분기에는 최종적으로 법안을 채택한다는 계획이다.